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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2. 2022

자연가의 열두 달

겨울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경의 돌리네 습지

월든의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몇 년씩 자연 속에서 살 시도는 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과 생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척도의 가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로마 사람들이 말했던 라틴어인 에스 알리에눔(Aes Alienum)이라는 남의 놋쇠라고 일컬어지는 돈으로 만들어진 빚의 진흙 수렁에 빠져서 산다. 그런 진흙이 아니라 태초에 진흙은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다에서는 갯벌은 머드라는 가치로 재탄생하고 있고 육지에서 진흙은 생태공간의 기반이다. 진흙은 척박한 자연에 다채로운 에너지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을 비추어주는 빛은 어디서 왔는가. 이 빛은 필자가 문경에 자리한 돌리네 습지를 방문했을 때의 그 빛이 아니다. 우리의 체질이나 성격이 제각각이듯 자연과 인생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이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누군가가 이곳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는 것만큼 기적적인 것인 것이 있을까. 땅에서 자라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그 가치를 중요시해서 직접 길러서 가까운 지인에게 직접 주기도 한다. 

돌리네 습지로 가는 길목에는 못 보던 것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소원을 말해봐라는 의미는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와도 연결이 되어 있다. 주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는데 이때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잘 먹겠는 것도 소원일 수 있다. 하루에 세끼를 먹는 것은 우리 식문화에서 얼마 되지 않았다. 밥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실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석으로 식사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침과 저녁은 우리의 식문화였다. 점심은 나중에 들어온 식문화로 한자를 보면 점을 찍은 마음으로 일종의 간식이었다. 

거의 5년 전에 처음으로 돌리네 습지를 왔을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태의 공간이었다. 2022년 12월에 찾아와 보니 돌리네 습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안내도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유심히 살펴본다. 어떤 동물들이 서식하는지와 구간으로 구분해서 안내도가 있었다. 

돌리네 습지에는 미소 서식지, 전망대, 옥녀 샘, 정자, 연리목, 벼농사, 낙지다리, 꼬리진달래, 들통발, 쥐방이 덩굴 등이 있다.  돌리네는 석회암지대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 지하수 등에 용해되어 형성된 접시모양의 웅덩이인데 일반적으로 배수가 잘되어서 물이 고이지 않지만 특이하게 습지가 형성된 곳이다. 

거의 모든 생물체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유일한 요소는 식량이다. 생태습지는 인간들은 미처 알지 못하는 구석구석에 생물체들의 식량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돌리네 습지에는 수달, 담비, 새매, 붉은배새매, 삵, 구렁이,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위덩굴들이 서식하고 있다. 

돌리네 지형에서는 논농사를 기본적으로 할 수가 없는데 연중 물이 유지되어서 논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시간은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고 이는 이때에도 지나가고 있다. 시간의 얕은 흐름은 이내 흘러가버리지만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대로 남는다. 이곳 어딘가에는 가장 풍부한 광맥이 있을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가 본다.  

누구에게나 1년에 열두 달은 주어진다. 자연가에도 열두 달은 주어진다. 자연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자연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열두 달을 잘 느끼다 보면 세상이 달라진다.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변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당신은 가보았던 곳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밝은 햇살이 비추어지면 그건 우리 모두를 밝게 비추는 햇살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이곳을 찾아오면 갈색의 자연정원과 마주하게 된다. 길쭉이 자란 억새가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데크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지난번에는 그냥 억새 사이로 걸어서 돌아보았는데 이제 문경의 생태정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의젓한 태가 나며 냄새를 잘 맡아보면 살아 있는 나무 내음을 풍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봄이 되면 처음 솟아 나온 새싹이나 특유의 가슴 벅찬 설렘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지질학적인 가치와 더불어 멸종위기 야생생물 6종과 희귀 식물 3종 등 총 731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보호지역이란 자연생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희귀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이 서식 도래하는 지역을 의미한다. 

사실 야생동물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아주 오랜 시간을 지켜봐야 하고 그 길도 알아야 한다. 이곳에 그런 멸종위기종들이 살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상상해보는 것이 가장 편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씨앗이 어딘가로 뿌려진다. 모든 식물은 씨앗 아랫부분에서 움튼 다음, 씨앗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채 고개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이기도 하다. 자연이 겨울잠을 들려는 낌새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한 해의 일은 대부분 끝이 났다. 그러나 자연은 겨울에 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위를 향해 자라는 것을 보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정한 자연가라고 하면 꽃이나 과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흙과 같은 흙을 가꾸는 것이다. 자연의 분주한 몸짓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모아 품는 것인지 알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다양성은 자연의 본성이다. 본종과 이종을 분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사유 방식일 뿐이다. 어떤 것이 만물의 이치에 가까운가. 

춥지만 열심히 문경의 돌리네 습지를 돌아다녀보았다. 인간이 자연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열정은 반복되는 성공을 통해 기운을 얻고 새로운 실패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이제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2023년을 만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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