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고인돌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고창여행지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한 곳에서 잘 모여 살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손은 참으로 대단한 진화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를 만들 수 있었기에 오늘날 문명이 탄생하였다. 고인돌은 서너 개의 받침돌 위에 한 개의 넓고 커다란 덮개돌을 얹어 놓은 선사 시대의 무덤 양식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인돌 *군집으로 1.5킬로미터 안에 440여 기의 다양한 고인돌이 모여 있는 고인돌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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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은 힘을 과시하면서 생존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많은 문명이 사라져 갔는데 평화는 힘이 없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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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고인돌이 놓여 있는 이곳은 고창의 선사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선사시대에 부족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고인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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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모습의 바퀴가 발명되기 전에는 무거운 것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그 부족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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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면 상갑리, 고창읍 죽림리, 매산리, 송암리 2km의 지역에 펼쳐진 고인돌군이 나오는 고창은 2000년 11월 29일, 강화,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고, 그 전후로 상갑리, 죽림리 일대의 유적지가 잘 정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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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로 시작되는 집단의 문화는 도시로 이어지게 된다. 고대도시로 발전한 로마에서는 상수도가 적용된 도시였다. 100만 명이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식수다. 이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먼 곳의 수원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배수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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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이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에 오폐수는 자연에서 정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대도시가 되면서 하수는 감염병을 확산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파리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고 나서 영국에서 촉발한 산업혁명으로 공기는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데 도시에 공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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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서 지금까지 오랜 시간 평면적인 곳에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건물의 높은 곳에는 뉴욕에서 엘리베이터가 적용되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밖에 없었다. 신데렐라가 왜 다락방에서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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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인돌의 모습과 선사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조용히 이곳을 돌아보았다. 사람이 사는 것은 똑같을 텐데 사는 방법만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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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산재돼 있는 고인돌유적의 다양한 기록자료를 한 곳에 통합관리하고, GPS 기반으로 각 각의 고인돌 위치를 제공하는 ‘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홈페이지에서도 다양한 고인돌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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