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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3. 2020

매화는 아내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렸던 매학정

매실을 만들어내는 매화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매화를 아내라고 생각할 정도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매화를 너무 사랑해서 아내라고 생각했던 선비들도 적지 않았다. 구미에 강이 흘러가는 풍광을 보면서 나지막한 언덕에 정자를 지어놓고 은둔의 삶을 살았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이후)가 그 주인공이다. 값비싼 아파트보다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에 정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자신이 머물렀던 언덕을 고산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을 그대로 호로 삼았다. 

매학정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됐으나 1654년(효종 5년)에 다시 지었고 1862년(철종 13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됐다가 1970년에도 크게 보수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보수를 하고 있지만 접근은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매학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황기로는 학을 길렀다고 하는데 어떻게 학을 기를 수 있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매화나무와 학이 좋아 매학정이라고 부르던 이곳의 주인공은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능력이란 그런 것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는 것이 진정한 능력자라는 생각이 든다. 

매학정에는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가로 두 칸에 세로 한 칸 반의 규모로 만들어져 있는데 충분히 세간살이를 담아 넣을 수 있지만 부엌이 없으니 말 그대로 정자다. 황기로는 은둔했다고 하나 재능이 풍부했던 사람이다. 조선시대 4대 명필은 안평대군 이용,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 고산 황기로를 꼽을 수 있다. 율곡 이이는 알지만 그의 동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이의 동생 이우는 황기로의 초서풍을 따른 서예가로 알려진다. 

매학정의 대청에 달려 있는 이 북의 용도는 모르겠다. 한번 툭 쳐보기만 한다. 가죽이 아직은 쌩쌩한 편이다. 황기로의 초서풍은 16ㆍ17세기에 걸쳐 폭넓게 유행했는데 점획을 과감하게 생략한 감필법(減筆法), 획간의 공간을 좁거나 짧게 처리한 속도감 있는 운필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가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율곡 이이는 사돈을 맺게 된 황기로와 바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늦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술이라도 가져왔으면 그 기분을 느끼련만 아쉽기만 하다. 


"맹세코 고기 잡고 나무하며 한평생 늙을지언정,

흐리멍텅하게 취생몽사는 하고 싶지 않네.

오늘 밤 술잔을 사양치 않음은

인간만사 털어버리길 여기에서 시작하려고."

‘매학정을 방문하다’ - 이이

가만히 매학정에 앉아서 은둔생활을 했지만 사실상 당대 인물들과 교류했던 황기로를 생각해본다. 율곡 이이는 이곳에 매학정기문과 시판을 남겼으며 이황의 시를 남겼다. 

자식이 없었던 황기로는 이우에게 정자를 물려준다. 전국에서 시인 묵객들이 몰려와서 이곳을 채웠다고 한다. 

매화는 수행의 꽃이자 선비의 꽃이라고 한다. 매화중 백매는 봄꽃에서 가장 먼저 피는 하얀 꽃으로 흰색은 고요하면서 안정되며 평화로운 그런 색이다. 매화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인생이 이곳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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