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밀도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밀도에 영향을 받을까?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생활권에서 가까이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은 밀도가 높아서 지대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주의 수준을 낮추던지 도심에서 먼 곳에서 거주하는 방법이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시가지면적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약자는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활권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생활패턴이 빨라지게 된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갈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뛰는 경우가 많아진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도를 재본다면 서울의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다. 어떤 이는 역동적이라고 하겠지만 시야는 좁아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등에서 지하철을 여러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다.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구밀도가 높은 순으로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속도가 다르다. 물론 그중에서 정말 바쁜 사람도 있고 시간약속에 쫓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울 같은 경우 상시 조깅을 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뛰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몇 정거장을 가면 자신의 직장에 도착할 수 있다면 그렇게 선수들처럼 뛰어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는 이동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나오게 된다. 속력은 속도와는 개념이 다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필요에 의해 가게 되는 곳까지 가장 짧은 최단거리를 가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걸 변위라고 한다. 반면에 속력은 이동 거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어느 방향이든 거리가 누적되어 표시가 된다. 순간속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이작 뉴턴이 고안한 미분법을 적용하면 정확하게 순간속도를 구하 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물리학 책이 아니니 머리 아픈 이야기는 넘어가 본다.
사람은 매번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방대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어떤 지점의 정확한 순간속도를 계산하는 것은 슈퍼컴퓨터가 바둑을 두는 것과는 또 다른 개념일 것이다. 한 사람의 반응과 바둑을 두는 경우의 수는 다양한 사람이 공간에 모여사는 것을 계산하고 순간적으로 결정을 달리하는 것을 모두 계산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사는 것과 한적한 지역에서 사는 곳에서의 시간개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시간개념은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거론되는 물리학적인 개념의 시간과는 다르다. 심리적인 관점에서의 시간이다. 매일매일 일상이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까. 2022년의 출산율을 보면 지역적으로 다르다. 서울이 가장 낮고 세종이 가장 높다. 세종에 가장 많은 직장인은 공무원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이어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결혼을 한 여자가 일할만한 곳이 많은 도시가 세종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세종이라는 도시를 가보면 알겠지만 시간이 느리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방 역시 서울이나 경기도, 인천에 비해 출산율이 높다. 주택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만약 인생에 속력을 재볼 수 있다면 인생에 굴곡이 있는 구간과 굴곡이 없는 구간이라던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속력은 누적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기만 하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속도는 순간적으로 속도가 매번 달라지게 된다.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인생의 과정을 일반화시킨 것이 지난 과거였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사람마다 느끼는 인생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그 다른 인생속도를 하나로 맞추려고 해 왔다. 그래서 매년 평균결혼나이라던가 출산나이 같은 통계를 발표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지적하곤 했었다.
속력처럼 인생의 전구간을 평균을 내버리면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의 1인당 소득을 모두가 납득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평균을 내서 일반화하고 그것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왜냐면 그것이 가장 쉬운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도시마다 속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라던가 도시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도시의 동심원이 넓어질수록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많이 뛸 수밖에 없다.
사람은 긴 여정을 끝내고나서야 얼마나 빠르게 혹은 정상적인 속도로 살았는지 아는 속력보다 순간속도가 중요하다. 현재를 살고 있기때문이다. 그 과정속에서 굴곡같은 커브나 수월한 직선코스를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는 속도의 원래의미하고도 다른것도 사실이다. 어떠누도시에 살면 다른사람의 속도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실 쉽지않다. 아니 무척어렵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만큼 소비하고 아이를 학원보내고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적어도 지금은 다른사람의 속도에 맞추려함이기 때문이다. 길게보면 속력처럼 계산될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는 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경기징에서 레이싱을 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누구나 거의 똑같은 시간을 부여받는다. 사는 곳의 높이에 따라 하루에 0.0001초 정도의 시간을 더 가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걸 느낄 수는 없다. 삶의 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게 태어난 이상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분모에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밀도 있게 선택할지는 가능한 영역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거리를 이동한다.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삶을 잠시 순간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도시의 속도대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개개인이 가능한 시간을 이용해 삶을 살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