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에서의 인연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광한루 : 조선의 명재상이었다는 황희가 유배 가서 처음 광통루라고 이름을 지었던 이 곳은 세종 26년에 정인지에 의해 광한루라고 정식으로 불리게 된다. 광한루는 둥근 보름달 속에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소희 : 오늘 날씨가 참 좋네. 겨울인데도 그렇게 춥지도 않고 돌아다니기에 딱 좋다. 게다가 춘향의 이야기가 담긴 남원이라니 분위기가 산다.

주만 : 난 솔직히 남원이 처음이야. 춘향전 춘향전 해서 그냥 호기심만 있었지 뭐 별게 있겠나라고 생각만 했었거든. 그런데 광한루 여행지로 괜찮네~

수진 : 광한루는 황희가 세우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볼 수도 없을 거야.

주만 : 그럼 이몽룡이 세운 게 아니란 말이야?

소윤 : 광한루에 이몽룡과 춘향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이야기고요. 광한루는 당시 판 한성부사였던 황희가 유배 왔다가 선조가 서실로 사용했던 옛터에 누각을 세운 것이 오늘날의 광한루예요.

진수 : 황희가 그런데 왜 이곳까지 온 거야? 이곳이 고향인가?

수진 :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려고 할 때 반대를 가장 심하게 했던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신하들이 죄를 물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파주로 유배 갔다가 너무 가까운 곳에 둔 것에 반대하던 신하 때문에 다시 밑으로 유배를 갔는데 그곳이 황희의 조상들이 있었던 남원이었던 거야.

성현 : 황희도 유배당한 적이 있었구나. 그런데 황희가 명재상이라고 불린 이유가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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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내 생각에는 명재상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서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며 위로는 왕에게 가장 좋은 협조자이며 아래로는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이 아닐까?

소윤 : 거기에 더 붙인다면 일을 따질 때에 공명정대함을 가진 사람이어야겠죠.

성현 :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워. 최근의 한국 상황을 보더라도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뒤에서 막후 조종을 하면서 망친 대표적인 사례가 있잖아.

진수 : 사실 한국사람들은 권력을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올라가면 초심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무지 어렵거든. 그래서 견제장치가 필요한 거고.. 만약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면 군자이던가 성인의 반열의 오른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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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그게 생각보다 쉽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

수진 : 그런 면에서는 황희가 명재상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 그가 죽었을 때 사관이 평가하기를 "작은 일에 너그럽고 큰 일에 엄격하다."라고 적었대.

진수 : 흠.. 그게 무슨 의미일까.

소윤 : 황희의 일화들이 적지 않은데요. 일화에 빗대어서 생각해보면 자질구레한 일에 무심했고 나라의 큰일이 있으면 한 치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람의 그릇이나 자질을 보려면 큰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큰일인데도 불구하고 작은 일처럼 처리해서 큰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큰 일처럼 쓸데없이 힘을 소모해서 정작 신경 쓸 일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춘향전 : 춘향전 이야기는 우리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이다. 정인을 기다리는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네 역사에서 고조선 이전까지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스토리이다. 춘향의 이야기는 전라북도 남원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곳에는 광한루라는 남원 관광의 중심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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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 난 패거리 정치 문화도 큰 문제라고 보는데 황희는 그런 점에서만 평가하면 지금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사람이야. 공직자로서의 행동이라던가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친척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벼슬자리를 내린 적이 없었으니까.

주만 : 그럼 그런 사람들이 부탁하면 황희는 어떻게 했대?

소윤 : 정식으로 과거시험이나 능력이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 벼슬자리를 얻으리라고 말했다고 해요.

진수 : 그렇게 하면 정치적으로 힘이 없지 않을까? 보통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관철하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잖아.

수진 : 그래서 국가 최고 권력자가 중요한 거지. 최고 권력자가 가장 많은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어. 능력이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있다면 패거리는 굳이 필요하지 않지.


문종실록 : 일을 따질 때에는 공명정대하여 원칙을 살리기에 힘썼으며 마구 뜯어고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90세까지 장수를 누렸는데 그가 죽자 조정을 비롯 민간에서나 모두 놀라고 탄식하면서 조상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여러 관청의 아전들과 종들도 모두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으며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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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원래 광한루에서는 춘향 이야기해야 되는 거 아냐? 너무 황희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수진 : 아직 시간이 많잖아. 그래 이제 춘향이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진수 : 광한루 참 괜찮은 곳인데 이곳에도 이야기가 있겠지?

성현 : 광한루야 광한루라는 정각이 중심이긴 하지만 이곳에 있는 연못은 남원부사였던 장의국이 조성한 거야.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다리인 오작교를 만든 후에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연못 속에 삼신산을 뜻하는 봉래, 방장, 영주 3개 섬을 축조했어. 광한루는 달 속에 항아가 사는 월궁의 '광한 청허로'에서 다온 이름이래.

소희 : 달 속에 항아가 산다. 항아가 누구지?

수진 : 항아는 쉽게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주신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인간계에 떨어졌다가 다시 신이 되기 위해 남편인 예가 곤륜산의 서왕모에게 3천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불사 나무의 열매로 3천 년이 걸려 만든 불사약을 받아오는데 예가 바람을 피우는 것에 화가 난 항아가 불사약을 혼자 다 먹고 달나라로 올라가 여신이 된 거지.

주만 : 아 그러니까 그 항아가 산다는 궁이 광한 청허 루이고 그 이름에서 따온 거다? 그럼 춘향이 절세 미색을 가졌다는 의미도 되겠네.

소윤 : 중국 사람들도 항아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아요. 2007년에 중국이 첫 번째로 달 탐사위성을 쏴 올리는데 그 위성의 이름을 항아에서 따서 '창허 1호'라고 붙였거든요.


이태백 : 월궁(달나라)의 항아 같다’라는 말은 최고의 미인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태백은 “하늘에 달 있은 지 그 몇 해던가(靑天有月來幾時) 잠시 잔 멈춰 묻노니(我今停杯一問之) 사람이 어찌 저 달 잡으리(人攀明月不可得)… 달 속 흰 토끼는 갈봄 없이 약방아 찧고(白兎藥秋復春) 항아는 홀로 있어 누구와 벗하랴(姮娥孤棲與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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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잉어 한번 정말 크다.

수진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항상 즐거운 것 같아.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여행하는 맛이 있지

소희 : 그래도 추우면 돌아다니기가 좀 힘들더라고.

소윤 : 그럼 이제 춘향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주만 : 춘향 이야기는 기승전 성공이야기 아닌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몽룡이 장원급제한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되는 거잖아.

진수 : 그렇긴 한데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 요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하잖아. 고진감래라는 말이 더 맞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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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 : 춘향의 이야기가 열녀의 이야기인 것은 맞아요. 그런데 시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룻밤을 자고 백년가약을 맺어 굳은 절개를 지켰다는 이야기는 좀 고루한 느낌이 있죠.

주만 : 뭐가 고루해.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여성의 그 곧은 절개야 말로 본받아야 할 이야기인 것 같은데.

소윤 : 그리고 이몽룡도 그래요. 장원급제를 했으면 그냥 그대로 보여주면 되지 굳이 몇 년 만에 나타나 비렁뱅이 꼴을 하고 테스트해보는 것도 아니고.

수진 : 극적인 요소를 위해 그런 거지. 한국 사람들은 그런 극적인 요소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잖아. 한국 드라마는 안 그런가. 옛날이야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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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사당 :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심 문을 지나면 춘향의 굳은 절개를 기리고 흠모하기 위해 1931년에 건립된 춘향 사당이 있다. 사당의 입구에는 '열녀 춘향사'라고 적혀 있는데 그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진수 : 영정을 보니까 고전적인 미인상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상당히 이쁜 건가.

주만 : 난 이뻐 보이는데

소희 : 한복을 입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선이 이쁜 것 같아.

소윤 : 선이 이쁜 여자는 여자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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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사당 : 남원시가 일제 강점기 때 이 사당을 건립하였을 때 현판 밑에 토끼와 자라를 조각하였는데 토끼는 '지혜의 상징, 자라는 '충성심의 상징'으로 토끼와 자라로 상징된 이 건물의 숨겨진 의미는 춘향이의 절개를 본받아 한반도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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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예전에는 이런 테마파크는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졌나 봐.

진수 : 춘향 테마파크 콘셉트는 괜찮은 것 같은데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이 없네.

성현 : 난 춘향이라고 이름을 명명해버리니까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춘향 이야기만 있어야 할 것 같고 춘향 이야기는 몇 번 접하면 질릴 수도 있잖아.

소윤 :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춘향 테마파크를 보면 드라마 촬영지인가? 아니면 춘향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래도 재방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보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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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소희야. 너라면 춘향이처럼 기다릴 수 있겠어?

소희 : 글쎄 그건 남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능성이 있고 말 그대로 백년해로를 할만한 사람이라면 못 기다릴 이유는 없는 것 같아.

수진 : 난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 솔직히 한 달 앞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글쎄~~

진수 : 조선시대에 장원급제를 한다는 것은 지금 사시를 합격하는 것보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소윤 : 맞아요. 온전히 실력으로 장원급제가 될 실력을 가졌다면 당시에 읽을 수 있는 서적은 모두 읽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공부가 필요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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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춘향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깨지기 쉬운 것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그런데 끓기 바로 직전인 99.9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 자신에 대한 믿음도 그렇게 힘든데 남을 믿는다는 것은 더 어렵지 않을까.

수진 : 수청을 수락하는 것이 바로 앞의 이익을 좇는 것이라면 수청을 거절하고 모진 매를 버티는 것은 이몽룡을 믿었다는 자신의 믿음이 결국 결실을 만든 것 같아.

소윤 : 언니들 이야기 들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해피엔딩도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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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이하이 이 히 내 사랑이로다’


수진 : 아! 그리고 소윤아 이몽룡이 몇 년 만에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 같아. 그리고 춘향전의 이야기도 실제로 따져보면 현실성도 떨어지고 말이야.

소윤 : 무슨 의미예요?

수진 : 보통 조선시대에 한 지방의 부사로 내려오면 3년 동안 근무한 다음에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거든. 그런데 이몽룡이 한양으로 가서 임금의 명을 받아 남원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소과랑 대과에 합격하고 왕의 비서인 승지(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에 올라가기까지 일사천리로 된다고 해도 10년 가까이 걸리는데 언제 와서 구해주겠어.

성현 : 수진이의 말이 맞기는 하는데 실존하였다고 믿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믿는 것이 인간적이잖아.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8일에 광한루 동편에 자리 잡고 있는 춘향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까.

소희 : 설화나 소설 이야기는 문학적인 의미도 있지만 시대의 관심사를 읽고 민족적 공감을 얻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지.

주만 : 그런데 남원에서 유명한 음식은 뭐야?

진수 : 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추어탕이야. 남원시에서는 남원만의 추어탕 맛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지역의 미꾸라지를 시내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까. 남원 추어탕은 섬진강 상류에서 잡힌 미꾸라지를 남원식으로 끓이는 추어탕으로 다른 추어탕 맛과 달라.

소윤 : 저도 맛있는 추어탕은 많이 못 먹어봤는데 그거 먹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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