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싸우지 않고 이긴 뛰어난 협상가

서희 : 942년 고려에서 태어나 998년에 사망한 서희는 무신으로 고려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정치하였다. 소손녕이 옛 고구려 영토를 찾겠다는 빌미로 수십만을 거느리고 내려오자 고려조정 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신으로 거란의 진영에 들어가 대군을 물리쳤을 뿐만이 아니라 압록강 동쪽 장흥(長興), 귀화(歸化), 곽주(郭州), 구주(龜州), 안의(安義), 흥화(興化)에 성을 쌓아 이른바 강동 6주(江東六州)까지 확보하였다.


수진 : 주만이도 서희 장군은 잘 알지?

주만 : 역사를 배웠다면 서희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세히는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어.

소희 : 오늘 서희 장군묘를 간다는 거지?

주만 : 굳이 이 외진 곳까지 와야 하는 거야? 그냥 커피숍 같은데에서 이야기해도 될 것을 말이야.

진수 : 역사를 알기 위해 인물의 흔적을 찾아가자고 한 것은 이미 이야기한 거잖아.

소윤 : 그래요. 오래간만에 멀리까지 오니까 바람도 쐬고 좋은 것 같은데요.

수진 : 고려역사에서 담판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낸 사람으로 서희만 한 사람도 없지. 거란군을 물리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강동 6주까지 확보했으니까.

진수 : 당시 상당한 수의 군사를 동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성현 : 그러려면 거란이 요를 세울 때 국제 정세를 알 필요가 있어. 당시 국제정세라고 해봐야 중국이 전부 이기긴 하지만 말이야. 거란은 유목 생활을 하던 부족으로 여러 부족 가운데 한 사람의 맹주를 선출해서 전체 부족을 다스리는 체제로 국가가 아닌 부족 연합체의 형태로 살아왔었거든. 북방 민족이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할 때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듯이 당시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라는 지도자가 등장하고 그를 중심으로 요(遼) 나라가 건국된 거지. 중국의 강남으로 진출하기 위해 차근차근 세력을 키워나가면서 발해 유민이 세운 정안 국까지 정벌하고 다음 단계로 고려를 노렸어.


정안 국 : 대조영에 의해 세워진 발해는 926년 거란의 기습 공격으로 멸망한다. 발해는 멸망하였으나 유민들이 발해의 옛 영역에 정안 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송나라와 교류를 하며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송나라와 같이 요나라를 협공하려고 했으나 송나라는 서하의 침공을 막는데 급급한 상태로 실제 협공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985년 요나라는 대규모 원정을 감행하여 정안 국을 멸망시켰으며 이듬해에 정안 국은 소멸해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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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 발해의 후손이 세운 정안 국이라는 나라도 있었구나. 그런데 고려가 정안 국을 지원하지는 않았나 보네.

소윤 : 고려가 정안 국에서 건너온 유민들을 받아주긴 했는데 국가차원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동시대에 중국의 중심에 있었던 송나라도 문치주의로 인해 그렇게 군사력이 강하지도 않았고요.

소희 : 일반적으로 송나라라고 부르는 나라가 북송이 맞지?

수진 : 응 중국의 왕조로 북송을 일반적으로 송나라라고 말하지. 당의 말기에 세습귀족이 몰락하고 군벌이 전역에 난립했는데 절도사 출신인 조광윤이 북송을 건국하고 주력군을 수도인 카이펑에 집중했는데 당시 도시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군사와 그 가족일 정도이니 숫자가 상당했던 거지. 그래서 국경의 경비에는 소홀하게 되었어.

성현 : 당시 거란이 세운 요는 이미 베이징과 다퉁 부근 만리장성 이남에 연운 16주를 회득하는 등 그 세가 한참 커지고 있었으니까.

주만 : 대세를 따른다면 그냥 거란에 협조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서희는 무슨 생각으로 담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

소윤 : 서희 장군의 협상전략을 말하면 상대방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는지 알아낸 것이 가장 유효했어요. 거란은 당나라와 발해 등에 밀려 부족 국가로만 존재했었는데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고대국가로서 자리매김하던 차에 송나라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던 거죠. 아무리 문치 사회를 지향했다고 하더라고 중국의 중국에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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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 맞아 소윤이 말대로 송나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껄끄러운 고려를 송나라와 끊어놓을 필요가 있었어. 게다가 고려는 반도에 위치한 곳이라 깊숙이 들어가면 자칫 송나라의 공격으로 자멸할 위험도 있었거든.

진수 : 그래서 소손녕이 대군을 일으켜서 쳐들어 온 거구나.

성현 : 993년(성종 12)에 침공을 강행한 거란은 바로 봉산군을 함락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안융진에서는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에게 막혔거든. 만약 거기서 이겼다면 분위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어.

주만 : 그래도 고려의 군대가 막을 수도 있잖아.

소희 : 전쟁은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지. 서희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거야. 요나라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반도에 있는 고려보다는 중원이 가장 큰 목표였으니까 고려의 태도가 어떤지 떠보는 것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어. 그런 걸 보고 협상력이라고 하는 거지.

수진 : 소손녕은 "너희 나라에서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이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라고 말하더니 80만 대군을 운운하며 항복을 권하자 조정의 대신들은 서경 이북 땅을 거란에게 넘겨주고 화친하자는 쪽과 전쟁을 하자는 강경파로 나뉘게 돼. 성종은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혹시나 더 내려올지 모르니까 창고에 있던 쌀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더 남는다면 대동강에 버리자는 결정을 하자 가장 큰 반대를 한 것이 서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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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그런데 왜 거란은 고려 땅을 달라는 거야?

진수 : 아마 거란이 있었던 지역이 대부분 고구려 땅이었으니까 너희들도 그 땅을 차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소윤 : 예 맞아요. 거란은 고구려 땅을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옛 신라 땅만 인정하겠다는 입장이었어요. 아무튼 서희는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모든 것을 하나씩 반박하죠. 국호를 고려로 사용하는 이유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미이니 오히려 거란의 땅이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어야 한다. 게다가 압록강 부근을 여진이 강제로 점하고 있으니 거란과 소통하는데 방해가 되니 여진을 치겠다는 말도 하죠.

진수 : 북진도 할 명분도 얻고 거란군까지 물리쳤네.

성현 : 사실 거란군은 이미 고려로 너무 들어와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물러날 명분을 준거지. 그 후 여진을 몰아낸 뒤에 압록강 동쪽 장흥(長興), 귀화(歸化), 곽주(郭州), 구주(龜州), 안의(安義), 흥화(興化)에 성을 쌓아 이른바 강동 6주(江東六州)를 구축하면서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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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 조강 윤이 오대 최후의 왕조였던 후주의 공제 시종훈에게 선양을 받아 세운 북송은 여진족이 요의 착취에 대항해 부족이 단결하여 1115년 스스로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바로 금과 같이 합공 하여 요를 멸망시켰으나 마음이 변한 금에게 멸망을 당한다. 송은 관료가 역대 왕조 중에서도 가장 우대받았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고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윤 :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해서 담판에서 화의를 얻어낸 서희는 돌아올 때 소손녕으로부터 낙타 10도, 말 100 필, 양 1천 마리와 비단 500 필을 예물로 받아옵니다.

진수 : 그럼 거기서 끝이 난 건가? 협상의 귀재라는 서희의 활약 말이야.

성현 : 서희가 회담 보고를 성종에게 하자 시중 박양유를 거란으로 보내 즉시 화의를 진행하려고 했어. 이때 서희는 여진을 소탕하고 옛 영토를 회복한 후에 국교를 하자고 했지만 성종은 당장 화의 하는 쪽을 선택하고 고려와 거란은 화의를 맺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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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 명분과 실리를 모두 확보한 한판 승부가 먹힌 거구나.

수진 : 고려 왕인 성종이 전권을 주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한 거지. 거란과 송나라가 만약 전쟁을 한다면 송나라를 위해 출병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이 맞아.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그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허수아비가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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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 서희가 묻힌 이곳은 정말 확 트인 곳이네.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도 명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어.

주만 : 1,000년도 넘은 곳인데 아직까지 잘 보존이 되고 있네.

소윤 : 보통 대군이 온다고 하면 겁부터 먹는데요. 80만 대군이라는 소손녕의 말에 지레 겁먹은 대신들이 땅을 떼주자고 하지만 그 본질을 파악해서 외교에 사용하는 대범함을 보여준 것이 서희였죠.


송나라의 유명한 재상 왕안석은 제6대 황제 신종때 인물로 소농민에게 낮은 금리로 융자를 해주는 청묘법, 중소 상인을 지원하는 시역법등을 제시하고 추진했으나 기득권유지에 급급한 보수관료층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실패로 끝이 났다. 그 결과 송나라는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서희 : 고려 광종 대에 재상으로 있었던 서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서희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총명했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서희는 고려 조정에서 파격적인 보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다가 거란과의 담판을 성사시킨 후 목종 원년에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서희에게는 서눌과 서주행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딸은 후에 현종의 왕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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