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06. 2023

땅속 문화유산

1,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구미 낙산리 고분군

한 때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며 산업도시로 자리매김했었던 구미는 도시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낙동강을 따라 가야와 신라시대의 유물이 자리한 곳이다. 양반 문화가 있으면서 고풍스러운 전통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땅속 문화유산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구미 낙산리 고분군이다. 매장문화재 유존여부를 파악하고자 땅만 쳐다보며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땅속보다는 땅 위에 있는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라미드는 그 규모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봉분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대형봉분문화는 그 지역의 경제력을 대표하기도 한다. 신라 전기에는 돌무지 덧널무덤이라는 형식을 왕실과 귀족층에서 애용하였는데, 구덩이를 크게 파고 구덩이벽에 기대어 돌을 쌓고 그 안에 원목(原木)으로 나무덧널을 상자형으로 크게 짜서 설치하고 외면에 돌무지를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구미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해평임도천년여행길. 크고 작은 고분들 200여 기가 모여 있는 낙산리 고분군의 부근에는 보물로 지정된 낙산리 3층석탑도 자리하고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동측의 냉산(해발 691.1m)에서 서측으로 낙동강을 향해 뻗은 구릉들 가운데 하나의 말단부 가까이로 이 구릉의 말미는 낙동강과 접해 있다. 봉토의 크기는 대형분은 직경, 높이가 15 ×4m 정도이고, 대부분은 10 ×2m 내외인데, 특히 작은 것은 5 ×0.3m 내외의 흔적만 남기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토기 양식은 낙동강동안양식토기(洛東江東岸樣式土器)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고, 경주지역이나 가까운 대구, 칠곡, 의성 등지와는 미세한 기형(器形)의 차이가 관찰되어 구미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이곳을 걸어서 올라가 보겠다고 열심히 위로 올라가 본다. 

낙동강을 따라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해 많은 유적이 남아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낙산리고분군(사적 336호)과 황상동고분군은(사적 470호)는 3~6세기 구미의 고대역사 비밀을 풀어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가야와 신라의 무덤들로 총 205기에 달한다. 


사람의 사후세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어떤 나이가 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과거보다 사후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나간 자리는 티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의 뇌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장 중심에는 파충류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그 바깥으로 계속해서 더 커지면서 현재 현생인류의 뇌가 되었다. 우리의 뇌는 항상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가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몇 천년의 역사에서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구미에도 적지 않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고분군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도시 조성은 많이 되어 있지는 않다. 고분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이겠지만 땅속 문화유산이 겉으로 나와 꽃을 피어나는 순간 스토리텔링으로 채색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테마파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