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념

독립 70주년 독립운동가의 기억

수진 : 애들아 오늘은 게임이나 할까?

진수 : 무슨 게임?

수진 : 이제 곧 독립 70주년이 되잖아. 흔적이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 언급하기 그리고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한 설명과 관점도 제시해야 해.

주만 : 나에겐 불리하잖아. 그리고 언제 그걸 다 말하고 밥먹으러 가?

수진 : 그래서 팀이랬잖아. 남자 세 명이 팀하고 나랑 소희랑 팀할게. 그리고 우리가 주로 충청남도를 돌았으니까 충남의 인물만 가지고 말하는거야. 어때 해볼래?

진수 : 흠. 세명이라고 해도 주만이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일테고 성현이가 주력이 되고 내가 보조하는 거겠네. 주만이는 지면 돈이나 내.

성현 : 아니야 주만이를 무시하지마. 생각외로 잘 하지는 못할거야.

주만 : 그게 무슨 말이야?

소희 : 그래 해보자. 그동안 우리가 가본 곳도 많잖아.

수진 : 자~ 해보자. 누가 먼저할래?

진수 : 레이디 퍼스트

소희 : 가볍게 받아줄게.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지. 유관순 열사 말이야.

수진 : 소희와 생각이 통했네. 독립운동에서 유관순만큼 비중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주만 : 솔직하게 삼일운동은 비폭력 시위한 것에 가깝잖아. 앞에 나서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 평가받아야 되는지는 잘은 모르겠어.

수진 : 일본과 한국은 우선 국민성이나 나라의 분위기가 다르거든. 일본은 그 우두머리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항복하면 그걸로 모든 백성이 받아들였어. 일본이 생각했던 조선도 그러리라 생각했기에 단계를 밟아가다가 결국에는 합병했고 종국에는 허울만 남아 있는 고종조차 승하하게 만들었으니까.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한 순간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만든거잖아. 그것만으로도 의미있지.

성현 : 그런 의미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때문에 삼일운동으로 인하여 정교한 정신개조에 들어가게 만든 것도 사실이잖아. 1922년의 유화 정책이나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바뀐 시기이기도 하고

소희 : 난 17살의 소녀가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독려한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백제의 계백장군이 신라군에게 열세에 놓이게 된 것도 어린 화랑의 죽음때문이었잖아.

진수 : 3.1운동이 의미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민족 지도자들이 타협적인 태도로 인해 대중 운동을 조직적으로 확산하지도 못하고 그 운동이 해외에 어떠한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 것은 한계지.

수진 : 그건 유관순 열사의 한계가 아니잖아. 배운대로 실천했고 행동하는 독립운동가로서 당당하게 일본군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보여주다가 옥사한 거니까.


MG0A4565_resize.JPG 유관순 생가 (충청남도 목천군 병천면 용두리)

성현 : 그래 수진이 말이 맞아. 그럼 우리가 바통을 받아서 말하면 우린 면암 최익현을 말하고 싶어. 변화를 위해 흥선 대원군의 섭정을 반대하며 계유상소를 올린 것이나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의병을 일으켜서 일본에 대항했잖아.

수진 : 의병을 일으키긴 했지만 전주와 남원의 진위대와 대치하다가 포기한 것은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말야.

소희 : 그래 조선인의 군대와 마주쳤다 하더라도 설득을 하던가 어느 정도 희생이 있다 하더라도 싸워서 흡수를 했어야지.

주만 : 자신의 동포를 죽일 수 없다잖아. 얼마나 멋진 행동이야.

수진 : 그건 순진한 생각이지. 최익현이 내건 청토오적소와 창의토적소를 보면 결사항전이라도 할 분위기였단 말야. 그리고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야.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를 보았다면 그걸 반면교사 삼아 확실하게 실행했어야지.

성현 : 당시 일본의 의도를 확실하게 간파한 사람이 많았을까? 많지 않았을거야. 아직 조선의 관료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군사를 통솔하는 사람이 최익현 편에 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반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독립을 위한 의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병조직이 제대로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의 이야기야.

소희 : 그렇지만 더 주도 면밀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어.

진수 : 일본군이 동학농민운동을 제압할 때 거의 피해 없이 해낸 것을 보면 최익현의 의병군도 큰 성과를 보지 못했을거야. 일본군의 화력은 막강했으니까. 청일전쟁도 승전했던 나라니까. 같은 동포와 피를 보고라도 이기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을테니까. 의미 없는 피를 보지 않은 것일수도...

수진 : 흠..그렇긴 하네.


MG0A8097_resize.JPG 대마도에 1986년에 세워진 최익현 선생 순국비

소희 : 이번에는 강력한 카드를 내밀겠어. 윤봉길 의사이야기는 어때?

진수 : 아~ 우리가 먼저 했어야 하는데

수진 : 아마 윤봉길 의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만한 것은 없을걸? 지식인으로서 행동가로서 윤봉길은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고 학교를 자퇴한 후 독학으로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교유하는 등 현실의 산 체험 속에서 농촌개혁에 눈을 뜬 사람이잖아.

소희 :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의 성과는 누가 뭐라 해도 확실하긴 하지.

성현 :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수뇌부를 폭살해서 통쾌하긴 하지만 폭력이 정당화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일까?

진수 :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개별 폭력이 정당화되고 독립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일본군 수뇌부를 죽여 우리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


MG0A2583_resize.JPG 윤봉길 의사 저한당

주만 : 잠깐만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는 것은 알겠는데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수진 :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훙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개최된 일본의 전승축하기념식에 참석한 일본군 수뇌부중 상하이 파견군 시리카와[白川義則]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켰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공사 시게마쓰[重光葵], 총영사 무라이[村井] 등에게 중상을 입혔어.

주만 : 혼자서 대단하네. 그 이후에 한국인들이 도시락만 들고 다녀도 검문이 심했겠다. 그런데 일본군도 엄호가 좀 허술했 던거 아냐?

진수 : 일본군의 입장에서 그들은 귀빈이었지만 당시 일본 경호는 빈틈투성이었지.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1901년 제임스 가휠드 대통령이 암살된 후에 대통령 경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어 주요 요인 경호로도 확대되었으니까. 그리고 일본은 설마 했었을거야. 그 사건 이후로 독립을 지휘하는 주요요인 잡기에 혈안이 되지.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지금 미국 경호실의 인원은 3,200명이 넘고 1년 예산만 17조가 넘는다니 대단하긴 해.

수진 : 일찍이 사랑방에 야학을 개설하여 한글.역사.산술.과학.농사지식 등을 가르쳤으며 상부상조를 목표로한 위친계를 조직했으며 갱생하여 힘을 기르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회장에까지 추대되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성현 : 그래 폭력의 정당성 같은 것을 말하면 주제에서 벗어나니까 여기까지.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의 거사 직후 체포되어 5월 25일 상하이 파견군 사령부 군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11월 18일 일본 오사카[大阪] 위수형무소로,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윤봉길 의사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2001년 12월 22일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의거에 사용된 물통형 폭탄, 자결용 도시락폭탄등 28종 56점의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윤봉길 의사 어록탑에는 이런 말이 남겨져 있다.


1. 뜻을 세우다 - 일본 글은 가짜다

2. 다같이 나가다 - 희망의 나라로 가자

3. 바로보고 바로배우자 - 미래를 현재의 토대 위에서 준비하자

4. 생명창고를 지키자 - 생명창고는 농민의 몫이다

5. 자유를 챙취하자 - 사람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6. 큰 사랑을 깨닫자 - 큰 사랑에 눈을 뜨자

7. 이상을 실천하자 - 사람은 왜 사느냐


수진 : 그래 이제 너희들은 누굴 말할래?

진수 : 성현아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은 어때?

성현 : 그렇지 김좌진 장군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지. 1920년 10월 21일에서 27일까지 김좌진이 이끈 대한 독립군이 청산리에서 일본군 3,300명을 섬멸하였으니까. 청산리 대첩이라고 할만 하지.

수진 : 그런데 그 이후 파벌과 주도권 다툼 때문에 독립군의 규모는 형편없이 줄어들었잖아. 그리고 반공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던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였던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했으니까.

진수 : 수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우파와 좌파의 조화를 모색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희 : 인간의 기본적 심리를 간과하고 하는 말이야. 민족주의냐 공산주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보면 자신이 기반세력을 확대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이 되는 거잖아.

성현 : 항일독립이라는 공동목표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은 차별 없이 힘을 합쳤었지만 1926년 5월 조선공산당만주총국이 결성되면서 상황은 급변해. 누가 농민을 많이 끌여들여 상대세력을 공격하여 지지기반을 넓히느냐에 몰입하고 있었어.


MG0A8671_resize.JPG 김좌진 장군 고택

소희 : 조금 이해가 안돼. 같이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에 내부분열을 한 것이잖아.

진수 :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야. 봐 여당에 비해 야당세력이 보통 약하잖아. 그런데 오히려 분열은 야당이 더 잘하지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에 당파를 나누어서 싸우잖아.

성현 :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정천도 처형당할뻔 했으니까. 1929년에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좌진은 영안현 지역의 농민들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만주총국의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해.

소희 : 그런데 중요한 지도자라는 것을 농민들은 몰랐을까?

성현 : 만주총국이 농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선전한 것은 바로 독립운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금을 징수해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즉 그들도 기존의 기득권들과 다르지 않다라는 거지.

소희 : 복지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세금 명목으로 빼앗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 모든 농민이 독립운동가처럼 생각하리라는 것은 무리일거야.

성현 : 당시 독립군 진영에서는 공산주의자였지만 동족의 손에 피살되었다는데에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구.

수진 : 그렇다면 우리가 다음에 말할 인물은 만해 한용운이야. 시인이며 스님이었고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

소희 : 여기서 님의 침묵 한번 안들어 본 사람 없잖아.

주만 : 나도 님의 침묵은 잘 알아.

수진 : 한용운의 집안은 예전에 매우 잘살던 집안이었어.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위세와 돈을 가지고 있었던 한명회의 동생 한명진이 한용운의 조상이니까.

주만 : 한명회가 동생도 있었구나. 몰랐네.

수진 :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하였던 33인중 한명이었으니까. 조선시대 말에 무능해진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던 사람이며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통해 저항문학의 선두에 선 것으로만 해도 독립운동의 대표성이 있다고 보는데..


MG0A8690_resize.JPG 만해 한용운 생가에 있는 한용운 동상

진수 : 그건 부인할 수 없지. 그런데 대처승 운동을 주도하여 중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달라고 호소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

소희 : 사견이지만 중은 왜 결혼을 하지 못해야 할까?

성현 :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속세에서 자유로와야 하잖아. 그렇기 위해서는 속세에서의 남녀의 결합 같은 결혼은 의미가 없지.

주만 : 맞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돈도 벌고 사유재산도 가지고 일반인과 다를바가 없지. 그속에서 어떻게 깨달아. 중은 결혼하면 안돼.

소희 : 불교도 종교잖아. 즉 신을 믿는 것인데 신을 믿는 학문인 신학과 인류학과의 다른 점은 뭐야? 동물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인간이 존재해야 신도 존재할 수 있잖아. 진정 관심받아야 될 대상은 바로 이땅에 살고 있는 인간이 아닐까? 그렇기에 중 역시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는거고 원한다면 결혼도 할 수 있어야지.

성현 : 흠..여기까지 하자. 오늘의 주제는 알다시피 독립운동이야.

수진 : 그래 한용운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까지만 알고 넘어가자. 한용운의 아버지는 홍성군 관아의 하급 임시관리로 일했기에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대. 20대 후반의 나이인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를 한 한용운은 이후 3.1운동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어. 한용운은 사회 단체 활동을 하면서 조국독립에 열변을 토했었지.

성현 : 우리가 앞서 말했던 인물 중 유관순을 제외하고 모두 독립운동의 방법을 평화적인 방법 보다 물리적인 방법을 선택했잖아. 한용운은 왜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임진왜란때 사명대사나, 휴정대사 모두 승병을 동원하여 일본에 대항했잖아.

수진 : 나는 한용운 같은 독립운동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글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잖아. 신간회를 결성하고 불교를 비판하면서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잖아. 소설을 통해 민족운동을 전개 했으니까.

소희 : 그리고 님의 침묵을 보면 여성적이면서 우아한 느낌이 들잖아. 감정적으로 보면 매우 부드러운 것 같지만 그 속의 메시지를 보면 저항하고 극복하여 회복의 시대인 광복을 염원한다는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 얼마나 시적이야.

주만 : 그렇게 많은 메시지가 있었단 말이야? 난 잘 모르겠는데.

소희 : 괜찮아 주만이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아.

주만 : 그리고 언제 끝나. 배고파~~~

수진 : 지금까지 보면 우리가 좀 우세인것 같은데. 어때?

진수 : 그걸 우리가 평가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우리가 밀렸다는 생각은 안들어.

소희 : 내용적으로 보면 우리가 더 충실했던 것 같아. 잘 먹을게.

주만 : 성현아 진수야. 우리 이대로 인정하는거야?

성현 : 머 수진이 팀이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니가 배고프다며. 그럼 진거야.

진수 : 그리고 우린 세명이잖아. 맛있는 떡볶이 어때?

수진 : 떡볶이는 인정하지 않음. 소희야 아구찜 어때?

소희 : 아구찜 좋지.

주만 : 괜히 했어. 독립 70주년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수진 : 독립은 의미있는거야. 아마 독립이 안되었다면 우리는 일본어로 앞에 나온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일제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근본적으로 모순이듯이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너희들의 모순도 인정해.

주만 : 알았어 그만하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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