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역사기행
주만 : 유네스코 세계유산? 그거 선정되면 좋은 거야?
수진 : 진수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뭔지나 알아?
주만 : 당연히 알지. 그거 있잖아. 오래되고 머 그런 걸 말하잖아. 그런데 왜 오늘 소희는 안 온 거야.
수진 : 집에 일 있다고 내려갔어.
주만 : 근데 왜 거짓말한 거야. 오늘 같이 온다며.
진수 : 소희 안 온다고 하면 네가 핑계 대고 안 올까 봐. 그럼 우리가 움직이기 힘들어지잖아.
성현 : 우리도 아쉬워. 소희의 철학 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좋은데...
주만 : 그래 그렇다 치고. 공산성이 유네스코 머시기에 선정되었다는 거야?
수진 : 응 2015년 7월에 세계문화유산에 편입되긴 했는데 세계적으로 더 이슈가 된 건 아쉬워.
진수 : 맞아! 나도 언론에서 공주, 부여, 익산 이야기보다 일본의 군함도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느낌이랄까? 반성을 안 했느니 그곳에 강제 징용시설을 표시도 안 했다고 언론에서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지배했었고 그 반성에 대한 내용을 한국과 비교할 수 있을까?
성현 : 진실을 알기 전에 너무 빨리 일본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국가대 국가로 모든 국민의 권리를 대신하면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고 해야 할라나.
진수 : 대한민국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데 있어서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긴 해. 그 다음에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 정도로 충분한 사과가 될 수 있는거야. 수진이는 어떻게 생각해?
수진 : 36년간의 한반도 지배와 수탈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정신대에서 있었던 분들이나 강제 징용당한 분들의 아픔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기 힘들 거야.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공식사과와 보상인데 그건 어려워 보여.
주만 : 왜? 잘못했으면 사과하면 끝 아냐?
성현 : 국가가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아.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말하지만 일본은 패전 70주년을 기억하거든. 일본 지배층에게는 아주 뼈아픈 그런 역사의 기록이야.
주만 : 그건 지들 이야기고. 자신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되는 거 아냐?
수진 :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지 않았겠지.
진수 : 나치 전범이나 한일합방을 주도했던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지극히 평범해 보였대. 사람들이 속한 정치체제에 빠져들게 되면 평상시라면 할 수 없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대.
수진 : 즉 그 시스템에서는 사고 및 판단에 대한 오류 자체를 검증하지 못하는 판단력의 무능이랄까?
주만 : 뭐가 판단력의 무능이고 오류야. 잘못한 거면 잘못한 거지.
성현 : 그렇게 간단한 거면 지금 벌써 유토피아가 되었겠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UNESCO World Heritage) :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일람표에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수진 : 공산성은 백제의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할 때 축조하여 동성왕 때 축성이 된 거야. 475년에서 538년까지 백제의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곳이니까. 백제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기도했지.
주만 : 그럼 공주는 겨우 64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셈이네?
성현 : 응 이미 백제는 사비시대를 생각했었어.
주만 : 그럼 바로 가지 왜 공주에 머물렀던 거야?
진수 : 새 천년을 기약할 수도를 만드는데 한 번에 뚝딱 만들 수 있겠어?
주만 : 그건 그렇지만.
수진 : 문주왕이 웅진 천도를 한 475년은 고구려의 장수왕 때문에 백제가 한성을 빼앗기는 등 국가의 존망이 걸릴 정도로 위기를 맞았던 해야. 강성한 고구려를 피해 내려오긴 했지만 그들이 상상했던 나라를 만들고 싶었겠지. 그리고 부여에 계획도시를 세우고 부소산성, 성흥산성, 노성산성 등 확실한 방어망을 구축하여 내려 갈려고 한 거야. 그 중간 도읍지가 지금의 공주가 된 거고.
주만 : 쉽게 말하면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한 거네. 지은 김에 북쪽의 방어 역할을 한 공산성을 튼튼하게 만든 것이구만.
진수 :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무령왕이 이곳을 기반으로 다시 중흥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고 볼 수 있겠네. 공산성을 보면 참 튼튼해 보여.
성현 : 석축의 상당 부분은 조선시대에 개축하면서 만들어진 거야. 그리고 임시수도라고 해도 중요한 요충지였기에 신라시대에는 웅천주도독이었던 왕족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웅진성에서 자결하기도 하고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피난을 간 곳이 바로 이곳 공산성이야.
진수 : 그러고 보면 조선 임금은 대부분 평생을 한양에 거주하면서 살았는데 전쟁을 피해 간 임금이 선조, 인조네. 가장 멀리 피난 간 왕을 꼽으라면 선조, 여러 번 피난 간 왕을 꼽으라면 인조. 하하.
수진 : 듣고 보니 그러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기 위해 피난 간 왕이지만 나라가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하여 붙여진 묘호 ‘조’가 붙어 있네
주만 : 나라가 다시 일어났다고 ‘조’가 붙는 거야?
수진 : 응 국왕이 죽고 난 후에 묘호를 어떻게 붙일지 의논하거든. 나라를 세웠거나 국난을 극복해서 나라를 다시 세운 임금에게는 ‘조’ 정통으로 계승하였으며 덕이 출중했던 임금에는 ‘종’
진수 : 선조와 인조가 ‘조’를 붙일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생각해봐야겠네. 흠흠..
주만 : 올라와서 보니 공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네.
수진 : 이곳이 공주의 요충지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중심이라고 볼 수 있고.
진수 : 이곳을 한 바퀴 다 돌아보면 거리가 얼마나 될까?
성현 : 지금 남아 있는 공산성의 둘레는 2,200m 정도야.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면 40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어.
주만 : 공주에는 공주국밥이 유명하다며?
진수 : 그건 어떻게 알았대?
주만 : 나도 다 찾아봤지. 여행에서 먹을 것이 빠지면 안되잖아.
수진 : 그런데 공주국밥이 왜 유명한지는 알아?
주만 : 맛있으니까.
수진 : 그치 맛없으면 안 유명하겠지. 공주시에는 국고개라는 곳이 있는데 고려시대에 마을에 일찍 아비를 여의고 살아가던 소년 ‘이복’이라는 효자가 눈 먼 어머니 봉양을 위해 국을 얻고 고개를 넘다가 국을 엎어 슬피 울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어.
주만 : 또 사오면 되지. 앉아서 울으면 머가 나온대?
진수 : 말을 말자. 자~ 공주장국이라고도 불리던 공주국밥이나 한 그릇 하러 가자
공산성 : 동성왕 때 축성이 되어 웅진성, 쌍수산성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공산성은 포곡형 산성으로 성내에는 영은사, 광복루, 쌍수정, 명국삼장비, 주초석, 창고터, 연못터등이 남아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보조산성이 있다. 백제 멸망 후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했고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