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팽창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어떤 국가나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 혹은 사람이 살아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ἐνέργεια(에네르게이아)에서 파생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즐거움이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에네르게이아라고 말할 수 있다. 즐거움 역시 에너지가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엔트로피란 물체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로 에너지 변화의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매일매일 하는 평범한 일상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즉 그날 식사를 했거나 물건을 샀거나 영화를 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그 과정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요즘에 많이 등장하는 멀티 유니버스에서는 다양한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우주들이 분기하기도 하지만 한 번에 하나의 인생을 살 수 있을 뿐이다.
물질의 변화는 대부분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때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어떤 물질이 폐쇄되어 있을 때보다 오픈이 되었을 때 그 형태가 변하면서 퍼져나가는데 이때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인 민주주의가 아닌 경제의 관점인 자본주의의 관점으로 본다면 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점점 무질서한 정도가 커져간다. 이 개념이 필자가 생각하는 머니 엔트로피다. 돈에는 어떤 정의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적고 많음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론 IMF나 금융위기때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에서 기적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해냈다. 최근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생에서 가치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인생에서의 1순위를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언급했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가족도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주머니사정이 그 무엇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19 발발 초기인 2020년에 미국 연준은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풀며 경기부양에 나섰다. 그렇지만 인플레를 잡을 타이밍을 놓쳐버렸을지도 모를 2022년 6월 15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같은달 18일 오후 2시 기준 가상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은 24시간 전과 비교해 9.3% 추락한 만 8천642.86달러에 거래되기도 했었다.
다시 엔트로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쉽게 엔트로피의 개념을 설명해볼 수 있다. 한 가정을 예로 들어보자. 남자아이 세 명을 키우는 매우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집에서 무언가 흐트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막내의 애교에 못 이겨 개까지 한 마리 키우게 되었다. 엄마의 성격과 달라서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은 뒤를 생각하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정신에 장착하였다. 그래서 딸을 원하는 부모가 많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회사일로 1박 2일 출장이 계획되어 있던 엄마는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을 간 사이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로 집을 잘 정돈해두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직장을 가자마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각과 달리 집을 전쟁터처럼 흐트러진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엄마가 나가기 전이 무질서도가 작은 상태이고 엄마가 도착할 때쯤이 무질서도가 매우 커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똑같지는 않지만 이런 상태를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예시로 든 가정에서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잘 챙겨먹였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사용하여 마음껏 집안의 상태를 무질서하게 만들어놓았다. 엄마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바람직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 시간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 에너지는 생산적이었을까. 그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정의 화목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 역시 출발할 때는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처음 자본주의라는 말을 언급했던 마르크스는 개개인의 욕망을 간과하였다. 시간이 흘러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의 대립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자본의 흐름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모두 계산해낼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불평등이라던가 빈부의 격차는 미래에도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차별을 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차별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기 원하기 때문에 차이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나 미국의 연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의장조차 돈이 어떻게 변화할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적당한 해석과 이론을 붙여 놓는다. 돈 역시 풀기 시작하면 증가하는 방향의 변화는 저절로 쉽게 일어나게 되는데 다시 줄어들게 되는 머니 엔트로피 역반응은 대부분의 참여자가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인 변화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머니 엔트로피의 수식은 간단한데 "ΔMS = MS 최종 - MS 초기"로 어떤 반응의 머니 엔트로피 변화는 최종 상태의 머니 엔트로피에서 초기 상태의 머니 엔트로피를 뺀 값이기도 하다.
돈이라는 것이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돈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돈이 풀리는 과정 속에서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는 돈들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실물경제가 만들어내는 가치보다 자본경제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훨씬 커진 이 사회에서 자본이 만들어내는 수익이 일해서 얻는 소득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는 대표적인 형태의 머니 엔탈피(MH)가 비트코인과 같은 형태의 가상화폐다. 코로나19기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연준이나 한국은행 등에서 경기악화를 막기 위한 금리조절을 통해 시중에 돈을 풀었을 때 모두 생산적인 요소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약해보였지만 협동이 잘되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이룩하고 현대의 자본주의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머니 엔트로피는 지난 세기보다 22세기가 더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세계경제는 자본과 자원, 에너지가 출입할 수 없는 외부가 없는 고립계라고 볼 수 있다. 세계경제 안에서 자발적 변화가 일어날 때 머니 엔트로피(MS)가 증가한다. 세계경제가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변화에 따르게 되는데 이때 세계경제의 머니 엔트로피 (MS)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그 돈들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보다 더 많이 벌고 있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는 빈말은 계속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성취의 수준을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자책해야 할까.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학군은 왜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에 있을까. 대학 간판 자체가 사회에서 성공이라던가 좋은 직업을 잡을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비유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이길 수 있는 아이템이 학벌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 간판의 무기화는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능력주의가 아무렇지 않게 폭정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정치에서도 보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가 무한대로 확장되듯이 세계의 경제규모가 커져왔듯이 머니 엔트로피를 확산되어 왔다. 인류의 역사에서 지난 200년간의 변화는 20만~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현생 인류가 출현했던 시간보다 더 많이 일어났다.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한 가정처럼 작은 공간이라면 다시 초기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전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에너지, 자원, 식량, 화폐 등이 모두 국경을 넘어 초연결된 지금은 자체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머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그것이 정부든, 회사든, 개인이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