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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4. 2023

가을낙화 (落花)

규암나루가 있는 곳에 자리한 부여 수북정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던 단풍들이 떨어지는 꽃처럼 땅을 향해 내려앉고 있다. 수분이 없어진 단풍잎들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나무가 1천 년 이상을 산다는 것은 우연하게 좋은 환경이 겹쳐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이 100년이 넘게 되면 자연스럽게 뿌리가 표면으로 올라오며 그 존재감을 몸소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이 휘감아 도는 곳 강은 문화를 만들고 키워내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잠재자원이 있다.

웅진은 아늑한 곳이었지만 한 국가의 수도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성왕이 생각한 것은 사비 지역이었다. 그를 도와 사비천도를 주도한 세력은 무령왕 소가계집단인 성왕계 왕족들, 사 씨(沙氏) · 목 씨(木氏) · 연 씨(燕氏)와 같은 대성(大姓) 귀족등이었다. 사비 도성에 해당하는 부소산성(扶蘇山城)을 먼저 축조하고 신도시로서의 기반시설을 차례로 만들었다.

백마강길의 규암나루가 자리한 곳에 부여의 중심으로 넘어가는 다리의 이름은 백제교다. 부여에 백제가 천도하였을 때 여러 갈래로 드나드는 길이 있어 백제의 도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 백제가 패망할 때 나당연합군의 침공이 있을 때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이 길은 백제의 도읍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수북정이라는 정자로 올라가는 길이다. 백제중흥을 염원하면서 사비천도를 통해 지배질서 확립과 왕권강화를 이룩하려던 성왕은 551년(성왕 29)에는 신라와 함께 고구려 공격을 추진하여 70여 년 만에 한성고토를 회복하였다. 그렇지만 비밀리에 고구려와 동맹을 체결한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이로 인해 554년(성왕 32) 관산성전투(管山城戰鬪 지금의 옥천)에서 신라 매복병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후로 위덕왕, 혜왕, 법왕은 암살로 추정되는 죽임을 당하고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게 된다.

사비성을 휘감아 도는 반월성과 백마강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수북정은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楊州) 목사(牧使) 김흥국(1557∼1623)이 건립하였다 하며, 그의 호를 따서 수북정이라 부르고 있다. 이 부근에는 자연스럽게 교역이 증가하여 규암시장이 있었으나 부여읍에 시장이 생기면서 흡수되었다.

김흥국은 광해군대에 벼슬을 하였지만 그의 시기가 끝나감을 알고 낙향하여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한다. 백제의 패망과 더불어 신라도 저물고 고려, 조선을 거쳐 역사의 흥망성쇠가 있었던 이곳에서 김흥국은 글을 쓰고 술을 마시며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논산 돈암서원에 배향된 사계 김장생이다.

계룡산이 금강으로 달려와 국사봉을 이루고 한번 굽이쳐 청벽산을 이루어 금강과 맞닿는 낙화암에 강의 자연성 회복을 통해 강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지고 인간 중심이 아닌 자연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점이다. 수북정의 천정은 가운데 기둥 부분의 서까래를 감춘 우물천장이고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로 깔았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수북정(水北亭) 정면에 붙어 있는 예서체의 기품 있으며 시선을 끄는 현판 글씨는 명필로 이름 날렸던 기원 유한지(綺園 兪漢芝·1760~1834)가 쓴 글씨다.

가을에 떨어지는 꽃처럼 사람에게도 흥망성쇠가 있다. 저 멀리에 꽃처럼 떨어져 내린 낙화암이 자리하고 있고 이곳은 조용하기만 하다. 시간의 흐름은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은 죽었지만 백제 성왕 혹은 위덕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琳聖太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1,400년 전에 오우치(大內)로 이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우치가문은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까지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기 얼마 전에 가문은 사라졌다. 나무의 한 계절을 보면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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