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향 이중섭

예술은 사회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걸어가는 분야이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사라져 갔고 그나마 다행힌 예술가들은 사후에 기억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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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 논산의 연산면이라는 곳에 가면 연산역부근에 새롭게 조성된 문화공간이 있다. 연산의 핫 플이기도 한 이곳의 다목적홀에서는 대향 이중섭에 대한 전시전이 열리고 있는데 황소로만 알려진 그의 삶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전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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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은 불과 39살의 나이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험한 생활고를 겪으면서 살다가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으며 정신병과 거식등이 한꺼번에 겹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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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서 이중섭을 생각하면 소와 가족이다. 그는 평생 소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았던 것을 작품으로도 확인을 할 수가 있다. 1916년 9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아버지 이희주(李熙周)와 어머니 안악 이 씨(安岳 李氏)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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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 이진태(李鎭泰)는 서북 농공은행장, 초대 평양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할 정도였을 정도로 부잣집이었고 집안 역시 부농이자 지주였다. 일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엄청난 부는 경제적인 부족함을 없게 살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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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면서 어릴 적부터 소를 그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소만 바라보기도 하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흰 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지원으로 미술공부를 하면서 커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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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가, 4월 도쿄 교외 무사시노에 있던 제국미술학교(帝国美術学校, 데이코쿠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1939년, 같은 미술부 한 해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21 ~ 2022)를 만나 교제를 시작하였고 1945년 5월 20일, 원산에서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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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섭은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해도 그려주지 않았을 정도이고,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도 한 자리에 모인 가족 그림은 그렸어도 가족 개개인의 초상화는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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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그림 중 아이와 가족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전쟁 이후에 화구를 살 돈조차 없을 만큼 궁핍하여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은 생활고, 가족을 떠나보낸 좌절감과 고독감은 점차 그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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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그림은 행복했던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서귀포 시절 행복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에서부터, 비극적인 사회 상황과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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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림 외에도 다양한 엽서화에서는 두 연인의 사랑이 진전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유로운 글씨와 즉흥적인 그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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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에 서울 생활을 하다가 미도파 백화점 전시회와 여러 곳의 개인전을 통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기를 기대했지만 수금도 되지 않고 출품작이 춘화라는 오해를 받아 작품이 철거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비참한 결과에 자책하며 정신적 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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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린 것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던 이중섭은 한국전쟁 이후에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생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평생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으며 가난을 해결하는데 급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돈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예술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았던 이중섭은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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