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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오감

동해 연필 뮤지엄,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그리고 쓰다.

어릴 때를 제외하고 요즘처럼 연필을 많이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을 앎으로서 상대를 알 수 있고 나를 돌아봐야 타인을 이해하고 마주할 수가 있다. 이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는 표현은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 지나면 그 향기에 동화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과 생활하면 썩어가는 생선의 방에 있어 오래 지나면 그 악취를 맡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더 맑고 좋으며 높은 경지를 원한다면 곁에 있는 사람, 더 넓은 곳에서 꿈을 펼쳐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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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은 연필로 쓰듯이 쓰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쓰고 맞지 않는다면 지우기도 하고 새롭게 쓰는 것도 하나의 용기다. 연필과 관련된 박물관으로 동해시의 연필 뮤지엄에 오면 왜 쓰고 왜 지우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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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에 물을 담아보면 그 물의 형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릇의 한계를 벗어나는 물은 있을 수가 없다. 볼펜은 한번 쓰이면 고칠 수가 없다. 지저분하게 지우던가 종이를 찢어내야 한다. 연필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다양성을 주는 것 같은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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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이는 연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것이 그려지기도 하고 쓰이기도 했다. 강원도라고 하면 황태가 만들어지는 덕장이 연상된다. 문화가 익어가는 덕장을 만나기에 겨울만한 계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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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 연필 뮤지엄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출생에 의문을 품으며 살았다고 한다. 만화가로 성공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월트 디즈니의 아버지는 도박꾼이었으며 자신의 가난함을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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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는 그런 환경 속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번 돈으로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고 미술 학원등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월트 디즈니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만든 미키 마우스는 그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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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이 주류였던 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것들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이 되고 있다. 알만한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모두 기념품과 같은 연필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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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쓰다 보면 결국에는 몽당연필이 된다. 작아져버린 몽당연필에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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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는 연필 깎기를 많이 사용했었다. 다양한 크기의 연필 깎기는 어릴 때 꼭 필요한 도구이기도 했었다. 커터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깎기도 했지만 마법 지팡이처럼 연필 깎기는 새로운 도구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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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꿈을 향해 꾸준하게 나아가야 한다. 인류의 스승이기 이전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던 공자는 그러나 ‘사람됨’의 도리를 배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상의 태도가 켜켜이 쌓일 때 나타나는 변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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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에도 명품의 타이틀이 붙여지면 가치가 올라간다. 우리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켜켜이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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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수정가능한 연필로 계속 쓰다 보면 슴슴해 보였던 그림이 짙은 색감을 만들어내면서 작품이 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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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 연필 뮤지엄을 돌아보고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망망대해를 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도 잡지 못하지만 조금씩 색칠을 입히고 덧칠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망망대해가 아니라 자신의 손에 쥐어진 엽서카드 속의 바다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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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동해바다의 촛대바위는 연필과 많이 닮아 있다. 순전한 우연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나 우리의 시선에 들어왔던 것들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일부로 남게 된다. 내 삶의 실체를 이루는 일부, 눈에 보이는 내 존재의 한 부분을 써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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