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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9. 2024

남포의 현감

남포면, 웅천읍, 주산면, 미산면, 성주면 일대를 관할하던 남포읍성

제주도에서 자신의 글과 그림을 완성한 사람으로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보령, 서산, 예산등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데 비에 그 이름을 새겨두었다. 친한 이들에게 그림과 글을 써서 보내주기도 했는데 藕船是賞(우선시상)이라고 하여 제자였던 우선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보내며 감상하라고 보낸 것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글과 그림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관직에서 있으면 왕성한 활동을 했었다. 

보령시 남포라는 지역은 큰 고을이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은 일부 무너져 내린 남포읍성만이 그 옛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남포면 읍내리 일대가 읍치(邑治)에 해당하며 남포초등학교 인근에서 옛 성곽과 관아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고읍면(古邑面), 향교구기(鄕校舊基) 등을 통해 읍치를 이전해 왔다고 한다.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의 남포면, 웅천읍, 주산면, 미산면, 성주면 일대를 관할하던 군현이었다. 

남포현에서 근무했던 현감들 중에 성달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순조대에 남포현에서 현감으로 근무를 하였다. 정조 사후에 조선은 탐학에 질린 농민들이 팔도에서 죽창을 들던 민란의 시대였다. 이곳에는 보령군 남포현 주민들이 현감을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웠는데 그 이름이 남포현감 성달영이었다. 이 대단한 사또 비석은 남포읍성 입구에 서 있다.

남포읍성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남포읍성 안쪽에 있는 이곳에서 머물면서 지역의 업무를 보았다. 남포관아문을 지나면 업무를 보던 곳이 나온다. 이제 시선을 돌려 위쪽에 있는 서산의 대산읍에 가면 큰 사거리에 대산종합시장이 있는데 그 건너편에는 비석 군이 있는데 그곳의 계단 위 맨 오른쪽 비석은 1826년에 충청우도를 다녀간 암행어사 영세불망비다.

1826년 9월에 세워진 그 비에는  ‘永防加歛·영방가렴’, ‘가렴주구가 더함을 영원히 막아줌’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암행어사는 5월 충청우도를 다니면서 수령 59명에 대해 이야기를 적어서 보고를 올렸는데 그중에 남포현감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길다.  ‘밤낮으로 오로지 자기 배를 채울 생각만 한다(晝宵一念只在肥已·주소일념지재비이)’(1826년 6월 24일 ‘일성록’)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을 과도하게 거둬 원래만큼만 나라에 바친 뒤 나머지는 싹 챙겨 먹는, ‘법 무시하기로는 있어서는 아니 될 부류’라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남포읍성에 암행어사로 왔던 사람 든 바로 추사 김정희였다. 성달영은 온갖 방법으로 세금을 거두고 자신의 배를 채웠다. 그러고도 주민들을 계속 압박하여 공덕비를 세워달라고 요청하게 만든다. 현지 사정을 모르는 충청감사가 “남포현감 성달영이 세금을 잘 거둬 지극히 가상하니 상을 달라”라고 포상신청을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김정희가 이곳에 와서 현청 금고를 잠가버린 뒤 현감을 파면하고 품계 또한 강등해 버렸다. 

이곳에 세워진 비마다 모두 이야기들이 있다. 모든 것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도 곳곳에서 보이지 않은 비리들도 있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발길을 시작한 것은 1826년  2월 20일 순조로부터 암행어사 임명장을 받고 ‘백십 여일 동안 읍내와 저자의 중요한 곳과, 산골짜기와 도서지방 외진 곳까지 두루 찾아다니며' 민정을 살피면서였다. 

남포읍성은 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으로 보령 성곽보다는 성곽이 더 길게 보존되고 있다. 남포읍성은 연해안의 외민족의 침입이 잦던 지역에 집중적인 축성이 이루어진 고려 말·조선 초기로 방어선 정비와 행성 및 진보의 축조, 연해 지방 진보 축성과 같은 3가지 커다란 국가적 축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1826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은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사람이 추구하고 행하지 않아야 될 것은 분명하지만 역시 반복한다. 충청도 남포현 지역은 백제의 사포현(沙浦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에 남포로 지명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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