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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6. 2024

세월을 낚던 곳

사람이 있고 시가 있으며 술잔이 있었던 경주 포석정지

자연의 물길이 아니고 돌 홈에 물길을 만들어 잔을 띄우려면 구조물의 각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것은 새로 생겨나고 어떤 것은 사라져 간다. 의미 있는 것에서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바뀌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경쟁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곳을 여행하다 보면 선택적으로 가봐야 할 곳을 정하고 간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옛 흔적을 보게 된다. 책과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 유명세로 인해 규모가 클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직접 가보면 생각보다 작은 것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때가 있다. 

이번에 찾아가는 여행은 경북동해안지질공원 남산자락에 자리한 곳이다. 경주남산은 불교와 관련된 산으로 금오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이며 헌강왕 때 남산의 산신이 현신해 나라가 멸망할 것을 경고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부근에서는 MBC 드라마인 선덕여왕이 촬영되기도 했었다. 삼국으로 나뉘어 있던 시대를 지내온 통일신라는 보름달이 찼을 때를 본다면 아마도 여왕의 시대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해 본다. 

달은 가득 차면 반드시 기울게 된다. 모든 것은 완전히 변하고 나서야 그 위급함을 알게 된다. 사람이란 존재는 미리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 와서야 깨닫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헌강왕은 이곳 포석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남산의 산신이 나라가 장차 멸망할 줄 알았으므로 춤을 추어 그것을 경고했던 것이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고 하여 나라의 예산을 오히려 방탕스럽게 운영하였다. 

남산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의 제일 첫 번째 계곡으로, 그 초입에 최치원(崔致遠)의 상서장(上書莊)이 있다. 그곳에서 이어져내려 온 이곳에 물길이 머무는 곳이 있다. 바로 신라인들이 즐겨 놀았다던 포석정이라는 곳이다. 

신라의 경애왕이 후백제의 왕 견훤이 수도인 경주까지 침공해 왔을 때에도 포석정에 나아가 놀고 있었다는 기록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에게는 망국의 상징이었지만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포석정으로 걸어가 본다. 

이곳이 포석정지임을 알리고 있다. 포석사라는 사당(祠堂; 제사 지내는 곳, 절이 아님)이 있었다고 하는데 돌 수로와 함께 지금은 고사한 당산나무 고목과 얼마 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올리던 돌 제단도 있다.  동서 긴축은 10.3미터, 짧은 폭은 4.9미터의 전체 길이 22미터를 돌아나가게 한 전복모양 수로를 통해 흐르는 물길에 술잔을 띄우며 즐기던 신라인의 풍류가 행해진 곳이다. 

풍화되는 돌 수로를 보호할 어떤 건물도 없고 수로의 서사적인 분위기와 입수의 중요기능을 장착했을 돌 거북의 모습도 알 수 없이 모호한 상태이다. 포석정의 석구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기 위한 용도로 안압지의 돌 수로는 흘러가면서 이물질을 걸러내는 정화작용을 할 뿐 곡선을 이루며 술잔을 띄워 실어 보내는 그런 기능은 없지만 포석정은 있었다. 

옆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조금씩 포석정을 들어 올리고 있는 듯하다. 어떤 계산을 통해 술잔이 돌아서 오게 만들었을까. 자연의 물길이 아니고 돌 홈에 물길을 만들어 잔을 띄우려면 구조물의 각도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포석정이 아니라 포석정 전시관에 오면 현대적으로 만들어놓은 포석정이 보인다. 거북이에서 나온 물길이 돌아서 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 술잔을 올려놓고 시를 짓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시로 남긴 것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 아닐까. 아우렐리우스는 분노를 주제로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는 진짜 남자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는 언제나 존재한다. 통일신라의 경애왕과 후백제의 견훤의 입장에서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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