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흐르는 감입곡류천변에 자리한 정자 방호정
한반도가 지금과 유사한 모습으로 생성된 것이 1억 4천만 년 전이라고 한다. 1억 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과학계에서는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 현재에도 오래된 지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청송의 백석탄 계곡으로 간다면 볼 수는 있다.
봉화에 가서도 약수만 있다면 멈추어 서서 한 잔을 채워 마셨는데 청송에서도 철분과 탄산이 듬뿍 들어간 약수를 마셔보았다. 청송의 약수로 만든 백숙은 국물이 초록 빛깔이 나며 닭고기의 색깔도 특이하다고 한다. 신촌약수, 달기약수는 모두 처음에는 좀 이상하지만 마셔보면 무언가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폴라시보 효과를 느껴볼 수가 있다. 아무튼 방호정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먼저 건너가 본다.
1억 년 시간의 흐름을 가진 이곳을 흐르는 천의 이름은 길안천이다. 신성계곡의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이곳에는 퇴적암이 1 억년 전쯤에 형성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곳은 감입곡류라고 하는데 골짜기를 파며 굽이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골짜기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여 풍경과도 어우러지는 곳이다.
감입곡류로 알려진 대표적인 지형은 바로 미국의 그랜드 케니언이 있다. 그 모습과 다른 모습이겠지만 형성된 시간은 비슷할 수가 있다. 내려오는 수량은 많지가 않아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흰 눈이라도 내렸으면 더 풍광이 좋았을 텐데 가을에는 더욱더 운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619년은 광해군대의 시간으로 조선에서는 명나라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구원병을 파병한 해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형식상 동로군을 보내는데 후퇴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그 해에 방호 조둔도라는 사람이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생모 안동권 씨의 묘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그 후 순조 27년(1827)에 방대강당 4칸을 늘려지었다고 한다.
ㄱ자형의 평면으로 중심 부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놓았고, 꺾여 위치한 부분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인 팔작지붕을 놓은 방호정과 그 뒤로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청송이라는 지역이 사과가 맛이 있는 이유는 지대가 높고 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단풍도 아주 예쁘게 물이 들기로 유명하다.
자연은 오랜 시간을 두고 변화를 한다. 인위적이라는 것은 없다.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휘어지면 휘어지는 대로 만들기에 억지스러움이 없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서 정자를 짓기를 즐겨했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걸맞게 이곳은 세계적으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유산과 경관의 보호, 교육,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운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로 내려와서 흘러내려가는 물을 바라본다. 방호정은 자연석 기단(基壇)과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남쪽에는 각 칸에 4짝 들어 열개문(위쪽으로 들어 열도록 된 문)을 달아 개울물과 앞쪽의 전망을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하였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던 아들에 대한 마음이었을까. 풍경을 같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오랜 시간의 힘으로 깎인 청송의 계곡의 암반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마음도 그렇게 부드럽게 깎이며 남다른 품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