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Family honor)

사시사철 젊고 고귀함을 유지한다는 청송심 씨 고장의 찬경루

그녀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고귀하면서도 사람을 품는 능력이 남달랐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있다. 남편이었던 세종이 가장 큰 신뢰를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역사상 재능이 많았던 아들들을 낳았던 여성이기도 했다. 한양을 뒤엎을만한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도 몸소 지휘해서 창덕궁과 종묘를 무사히 지켜낸 그녀의 이름은 청송 심 씨인 소헌왕후다.

MG0A2403_новый размер.JPG

사과로 잘 알려진 고장 청송군은 이름부터가 맑은 느낌이 드는 고장이다. 그 지명은 조선조 세조 때 송생과 안덕현을 편입 합병하여 청송도호부로 승격될 당시 이전의 지명이다. 청송의 청이라는 의미는 푸른색, 봄, 동쪽, 젊음을 상징한다. 딱 이맘때 방문하면 좋을 여행지와 누각이 청송의 찬경루다.

MG0A240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이곳에 오면 청송 심 씨와 관련된 지명과 이야기가 곳곳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청송 심 씨인 심덕부는 고려말에 위세가 당당했던 군벌이었다. 고려말에 최영, 이성계와 더불어 고려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이성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위화도 회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조선 건국 후 회군공신 1등에 봉해졌으며 가문의 영광은 왕조에 드리워질 정도였다.

MG0A2407_новый размер.JPG

청송심 씨 시조 심홍부(沈洪孚)의 재각(齋閣)인 찬경루 뒤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은 운봉관이다. 청송군 객사의 일부로, 1428년(세종 10)에 군수 하담(河澹)이 찬경루(讚慶樓)와 함께 건축한 것으로 1600년대, 1717년(숙종 43), 1812년(순조 12)에 각각 중건되었다. 그 자체로 멋들어진 이 건물은 배면의 주상 공포는 제공살미가 매우 길게 돌출되어 연꽃과 연봉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그 위세를 더하고 있다.

MG0A2408_новый размер.JPG

심덕부를 비롯하여 그의 아들들은 모두 조선왕조에서 막강한 입지를 보여주게 된다. 왕의 권위를 넘어설 정도로 청송 심 씨 가문은 절정을 다했는데 특히 다섯째 아들인 심온의 딸이 충녕대군과 혼인하여 경숙옹주에 봉해지고 이어 충녕이 세종에 오르자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너무 밝게 채워진 달은 기운다고 했던가. 물론 이곳의 분위기는 야경만큼이나 아름답고 분위기가 좋다. 찬경루는 1428년(세종 10)에 창건하였으나 그 뒤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792년(정조 16)에 재건하였고, 그 이후 수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MG0A2409_новый размер.JPG

용전천의 북안 암반 위에 남향하여 찬경루가 있고, 그 바로 후방에 운봉관이 서남향으로 앉아 있는데 운봉관은 잡석을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은 대체로 좌측 반은 각주를, 우측 반은 원주를 사용하여 만들어두었다.

MG0A2411_новый размер.JPG

이곳에 자리한 건물들은 모두 세종대에 건립이 되었기에 청송 심 씨 그리고 소헌왕후와도 관련된 흔적들이다. 청송 심 씨들의 세력을 어떻게든 눌러야 할 필요가 있었던 태종은 사돈 가문을 숙청할 계획을 세운다. 태종의 마음을 읽은 박은이 실무적인 주도를 하여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을 숙청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야사에서는 심온이 반남 박 씨의 가문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남겼다고 한다.

MG0A2414_новый размер.JPG

소헌왕후의 처가는 아버지가 숙청되고 그 형제들도 귀양을 갔으며 어머니는 관노로 전락하였다. 그녀는 내명부를 잘 통솔하였으며 왕실의 살림을 잘 이끌었다. 해가 저물었어도 소헌공원은 분위기가 좋다. 이곳이 소헌공헌으로 바뀐 것은 2011년으로 찬경루·운봉관 사적공원(가칭) 명칭을 소헌공원(昭憲公園)으로 바꾸게 되었다.

MG0A2417_новый размер.JPG

청보의 靑자를 따고 송생의 松자를 따서 청송이라 이름하게 된 청송군(靑松郡)의 소나무 송은 절조, 장수, 번무를 상징한다. 청송군은 슬로시티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 산소 카페를 지향하고 있다.

MG0A2419_новый размер.JPG

할아버지대부터 아버지, 딸로 이어졌던 청송 심 씨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용전천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세워진 규모가 큰 누각은 조선초 왕후를 배출한 심 씨 가문의 위세뿐만이 아니라 청송을 대표하는 성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봉준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