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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2. 2024

수학, 역사, 독립

보재 이상설의 삶의 담겨 있는 진천 이상설 기념관

지금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어떤 콘텐츠를 볼 때 그와 유사한 혹은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추천해 준다. 물론 자신의 폰등에 담긴 쿠키값을 참조하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추천해 주는 기반에는 수학이 있다. 그런 걸 조건부확률이라고 한다. 가령 어떤 영화 A와 B가 있는데 C라는 임의의 가입자가 영화 A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가입자가 영화 B를 좋아할 확률이 70% 정도로 높이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D라는 가입자가 영화 B를 좋아한다면 영화 A를 추천하면 만족도는 70%에 가깝다는 확률이 나온다. 

5월에는 스승의 달이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헤이그 밀사로 알려진 보재 이상설 선생은 한국의 수학의 기반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했으며 조선의 미래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물리, 화학등의 기반이 되어 공부하는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진천의 충렬사라는 곳이다. 

 1900년(광무 4) 편저한 사범학교와 중학교 수학교과서인 '산술신서'와 1910년 경술국치를 반대하고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각국에 알리고자 조직한 성명회의 선언문과 서명록 등이 이곳에 보관이 되어 있다. 처음 언급했던 조건부확률을 간단하게 계산해 본다. 수치를 단순화하기 위해서 데이터베이스에 사람이 100명이 있고 모두 범죄도시 3편과 4편을 봤다고 가정해 본다. 

두 영화에 대한 특정합 선호 조합을 갖는지 교차표를 작성할 수가 있다. 범죄도시 3편과 4편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과 범죄도시 3을 좋아하지만 4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범죄도시 4를 좋아하지만 3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혹은 둘 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등으로 매트릭스를 짤 수가 있다. 100명의 가입가 범죄도시 3을 좋아한다 75+25, 100명의 가입자 중 75명은 범죄도시 4를 좋아하고 25명은 그렇지 않다. 조건부확률로 계산해 보면 어떨까. 범죄도시 4를 좋아함/범죄도시 3을 좋아함 = 75/75+25 = 75%라는 결과가 나온다. 물론 규모, 누락문제, 조합합산등으로 정밀하게 조정해야겠지만 이 모든 것이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상설 선생이 살던 시대에 수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1899년 보재 이상설(1870~1917)이 집필한 수학서 ‘수리’(數理)를 집필했다고 한다. 이상설의 수학적 시도가 자주적인 것은 수학기호를 쓰면서 한글을 병용하였다. 이상설이 집필한 ‘수리’의 전반부는 중국의 근대 수학책인 ‘수리정온’(數理精蘊)에서 주로 발췌해 필사했지만 후반부에는 수리정온에는 없는 구면삼각법 등 근대 수학의 새로운 개념들이 속속 등장한다. 서양에서 사용하던 기호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보재 이상설 기념관은 한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높은 천장고에 한옥의 전통구조를 살려서 만든 곳이다. 헤이그 밀사로 가기 전에 수많은 활동을 했었다. 서전서숙 설립, 한성사범학교 교관, 신학문과 근대사상, 구미외교활동, 대전학교 설립지원, 성균관 관장, 을사늑약 파기 상소, 황무지 개척권 파기 상소, 국민회 결성등 수많은 활동이 중심에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에 수학을 포기한 일명 수포자나 학교를 졸업해서 수학기호가 그냥 머리가 아픈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상설이 1900년 발간한 산술신서에는 피타고라스 정리에서부터 제곱근, 복호를 포함한 2차 방정식, 지수법칙등까지 서술하고 있다. 

총론에서는 수·정수·공리 등 각종 수학용어의 개념을, 각론에서는 가감승제를 비롯하여 정수·소수·최소공배수·분수 등을 다루었다. 중간중간 예제를 두어서 학습자가 직접 문제를 풀어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배움이 있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기반을 만들어준다. 막연하게 옳고 감정적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고 선택에 합리성을 부여해 준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보재 이상설은 수학 외에도 영국인 후커가 저술한 ‘보터니’(Botany)를 재해석한 ‘식물학’(植物學)과 물리학책인 ‘백승호초’(百勝胡艸), 화학책 ‘화학계몽초’(化學啓夢抄) 등을 집필했다. 

그의 삶에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에서 역사 속의 흐름을 살펴본다. 매년 진천군과 국가보훈부가 후원하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제에는 진천군수 등이 참석해 선생의 민족사랑과 애국정신을 기린다.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선생은 건강이 악화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향년 48세로 순국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불꽃같은 인생 속에 독립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기념관은 진천읍 산척리 9830㎡ 터에 지상 1층, 지하 1층(전체면적 1508㎡) 규모로 상설·기획 전시실, 프로그램 체험실, 학예연구실 등을 갖췄다.

진천군은  1999년 기념관 인근에 있는 선생의 생가를 복원했으며 이상설 기념관은 2015년 국가 현충 시설로 선정된 이후 9년여 만에 문을 열었다. 

새롭고 오래된 학문을 함께 공부하면서 여러 학문을 섭렵하였다고 한다. 보재 이상설의 탁월한 이해력에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모든 학문은 통찰력과 이해력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학문도 단순 암기로는 한계가 있다. 

일본과 약관을 체결하여 마침 조인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고종에게 그 약관이란 인준을 해도 나라는 망하고 인준을 아니해도 나라는 또한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차라리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뜻을 결정하고 단연코 거부하기를 고하였다고 한다.  

이상설의 헤이그 특사단의 대장정은 1907년 4월에 6월까지 이루어진다. 고종의 밀명을 받은 이상설은 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동지에게 부탁하고 4월 3일 룽징을 떠나 이동녕, 정순만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였다. 이에 맞춰 이준은 4월 20일경 고종의 임명장을 받고 부산에 도착한 후 일보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합류한다. 시베리아 열차로 상트레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이위종과 합류하여 헤이그로 향하였다. 그들의 여정은 일본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역사 속에 헤이그 밀사로 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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