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바다풍광으로 만들어진 보령의 갈매못 성지
수려한 바다경관을 바라보며 겯다 보니 길에 대한 것이 궁금해졌다. 타임머신은 발명하기가 요원하니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갈매못 성지는 10여 년 전에 가보았으니 10년 후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해 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때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사람은 영원한 것을 거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가지 자아를 가지게 된다.
5월의 셋째 주 주말은 여행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화창한 하늘과 미세먼지도 많이 없다. 점점이 펼쳐져 있는 배들을 바라보며 마치 어떤 척도로 미래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말에게 물을 먹이던 갈매못에서 처형당한 다섯 명의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소망과 사람을 피로써 받쳐진 다섯 분의 순교지 갈매못성지는 천주교의 성지로는 유일하게 바닷가를 보는 위치에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충청수영성이 코앞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이 많았다. 갈매못 모래사장에서도 약 5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고 한다. 갈매못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뒤, 그 시신이 포졸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지거나,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버려 저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고 한다.
이 데크는 설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바다를 보면서 쉴 수 있도록 데크공간을 조성해 두었다.
1845년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하여 다블뤼 안주교는 1866년 합덕 거 더리에서 화석두 루가와 함께 붙잡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오매트르 오신부는 수원샘골에서 위앵 민신부는 합덕 세거리에서 주교가 잡힌 거 더리로 찾아가 함께 체포되어 대원군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갈매못성지의 내부는 계속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름이 남겨진 분들의 이야기와 함께 무명순교자의 이야기들도 있다. 효시는 효시경중의 줄임말로 참수나 능지처참 후에 행해진다. 대체로 대역죄인에게 내려졌으며, 보통 3일 동안 효시되었다. 천주교도인들은 대역죄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라의 근간을 지탱하던 것이 왕을 중심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천주교의 교리는 절대적인 문제였다.
효시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서 이런 행동을 했을 때는 이같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로 활용이 되었다.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는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병인박해가 마무리되었고, 1886년 조선과 프랑스의 국교 수립으로 천주교 포교가 공식으로 승인되었다.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은 반국가법에 의해 관리가 된다. 지금 북한이 가진 이념을 한국에서 인정 안 하듯이 말이다.
지난 3일부터 이번주말까지 상반기 걷기 여행주간이었다. 올해 걷기 여행주간은 기존 코리아둘레길 걷기 여행에 어촌체험휴양마을을 추가해 어촌마을 체험·숙박시설 할인 등 어촌관광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양수산부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관광을 통한 어촌지역 경제 활성화의 일환이기에 보령과 같은 지역도 해당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납득이 되지 않던 것이 납득이 되는 문화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곳에 서 있을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