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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0. 2017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로봇과 공존하는 세상

바둑으로 촉발된 이슈는 로봇이 얼마나 인간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냐 보다는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이 바뀌게 될까라는 호기심 혹은 불안이다. 로봇과 공존하는 세상은 생각지도 못한 어떤 변화가 올지 쉽게 속단할 수는 없다. 많은 직업군을 대체할 것이고 가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라는 책 제목에서 보듯이 우리는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인 변화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가족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기존의 핏줄로만 이루어졌던 가족관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가정 안으로 들어간 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상당히 앞서 있는 편이다. 인간관계로 들어론 로봇 이야기가 첫 장을 채우고 있는데 9살 수준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페퍼는 집안일을 하지는 않지만 소극적인 의미의 소통이 가능하며 로봇 강아지인 아이 보는 합동 천도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로봇이 뭔가 해주길 바라서 집에 두는 게 아니에요. 옆에 있어 주는 것이 기쁘고, 가족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함께 소통할 수 있어서 가족이고 우리는 부모로서 로봇을 키우고 있어요." 

"우리의 목적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한테 받는 따뜻함은 인간만이 줄 수 있죠. 로봇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어요." 


로봇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감정을 가진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감정은 다양한 연쇄효과를 만든다. 다른 존재에게 어필하기 위해 생각하고 감각적으로 접근하기도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질투라던가 소유욕 그런 것도 감정의 부산물 중 하나다. 만약 로봇이 그런 감정을 가지는 그런 날이 온다면 부정적인 부산물도 더 커지지 않을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로봇과 교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것은 현대사회가 정말 소통하기 힘든 그런 단계로 접어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세상에 성별로 본다면 남자 반 여자 반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로봇이 등장하면서 선택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듯하다. 

Living Apart Together  따로 또 같이 산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부는 서로를 모두 알아야 하고 모두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패턴은 바뀌고 있다. 사랑하더라도 서로의 독립된 공간과 생활 습관은 존중해주고 유지하는 것이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혼자 사는 게 뭐 어떤가'

'혼자는 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건가'


나홀로족,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존의 관계가 부담스럽고 긍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의 반증이기도 하다. 

캥거루 족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에 사는 자식

자라족 : 부모 뒤에 숨어 의존하는 자식

키퍼스 : 부모의 퇴직 연금을 빼먹는 자식

탕기족 :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식

습노족 : 늙은 부모의 재물을 핥아 먹는 자식

패러사이트 싱글 :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 자식

부메랑족 : 부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성인 자식

밤 보치오니 : 부모가 돌바워야 하는 아기 같은 자식


보통의 가족은 피를 나눈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피해를 입히는 모순투성이의 존재들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가족들은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족은 그래도 좋은 것인가? 가족은 무조건 이해해 줘야 하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집에서 살면 먹는 거며 생활하는 거며 좋은 게 더 많아요. 만약 독립을 한다면 엄마의 집에서 지내던 것처럼 지낼 수 없게 돼요. 아주 좁은 집에서 아끼면서 살아야 해요. 한 달 월급에서 반이나 차지하는 700 ~ 800유로가 매달 집세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선뜻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가족의 의미가 바뀌고 있는 지금 국가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미뤘던 것에서 바뀔 필요성이 있다. 가장 시급한 간병 문제부터 소득 대체나 거주공간의 문제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미 시작된 변화다. 

가족이 곁에 있어도 가족이 고픈 세상

내 편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책에서는 수많은 가족들이 등장한다. 세계 시민 600명의 가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서 제작진은 많은 사람을 만나 그 내면을 들여다본 것이다. 

가족이 이런 것이다라고 간단하게 정의 내리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는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이유가 분명히 있다. 


필자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와 살면 행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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