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n 19. 2024

날마다의 새로움

논산 연산문화창고에서 만나는 일생을 화폭에 담은 화가 모네

싦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될까. 언제나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되기까지 거대한 기업 한 곳이나 연구집단 혹은 언론등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우 미묘한 다양한 우연들이 겹쳐지면서 하나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본격적인 변화가 만들어진다. 최근 AI의 변화 역시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AI가 대두된 지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냥 하나의 기술로만 인식되었다가 엔비디아, 애플, MS, 어도비등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AI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혹은 그림에 대해 계속 접하다 보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화가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을 걷고는 싶지만 그것이 사회의 흐름과 맞지 않을 경우 적지 않은 고립과 고난을 겪게 된다. 자신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사회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화가 클로드 모네는 영원한 빛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는 않았다. 그 시대에 다른 관심과 방식을 추구하던 화가들과 달리 인상주의로 시작했고 인상주의로 평생을 그리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그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이 클로드 모네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였으며 연작을 통해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탐색하면서 살았던 그의 삶 속에 아내와의 만남, 결혼, 죽음까지 화가로서 일생을 화폭에 그려냈던 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전이다.

1840년에 태어난 모네는 1870년 런던에서 활동 중에 폴 뒤랑 뤼엘이라는 화상을 만났다고 한다. 뒤랑 루엘은 파리에서 모네의 그림을 팔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지만 그 시기에 유명한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여 명성을 얻으려고 했으나 모네와 동료들은 계속 낙선하게 된다.

작가가 되었던 화가가 되었든 간에 결국에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고 팔려야 자신의 작품활동을 원활하게 계속할 수가 있다. 모네와 르누아르, 세잔, 시슬레 등 30여 명의 예술가들은 협동단체를 구성하여 1874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제1회 인상파 전시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전시회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서양 미술사에 영향을 미친 인상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의 화제라고 한다면 AI가 될 것이다. 19세기는 급속한 산업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는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특히 유럽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모네는 그렇게 변화하는 산업적인 풍경과 자연이 공존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현대적 풍경들은 근대화를 향한 진보의 증거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구성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였었다.  

어떤 도시에서의 삶은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파리에서 그림을 판매하게 시작한 1870년부터 1878년까지 모네는 파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새롭게 변모하는 시대적 특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소로서 파리에 집중했었다. 거리의 군중을 표현하고 길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모습이나 새로 만들어진 생 라자르 역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현하여 구성한 연작을 구상하기도 했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결국 파리에서의 삶을 청산하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든 간에 이성은 한 사람에게 큰 변화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네에게 그런 이성은 카미유였다. 1865년 화가와 모델로 만나고 나서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카미유를 그린 초록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젊은 화가 모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사랑에 빠져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난한 집안의 직업 모델 카미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버지와 고모는 모든 지원을 끓어버렸다.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하다가 1970년 카미유가 아들 장을 낳은 지 3년 만에 드디어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잘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가며 살아가던 중 카미유가 둘째 아들 미셀을 출산한 후 1879년 9월 32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 후 모네는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모네는 자연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베껴야 한다면 가장 위대한 것을 베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라는 말을 했었다. 모네의 그림은 팝 아트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행복한 눈물로 잘 알려진 화가다. 인상파 클로드 모네의 루앙 대성당 그림들을 그린 연재 미술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성당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도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면서 살아갔던 모네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기에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담아 화폭을 채우는 것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영원한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 레플리카 체험전

2024.06.01. (Sat) ~ 07.21. (Sun)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