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수경
옛날에 3개월인가 잠깐 다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돈을 빌리다가 못 갚게 되면 그 사람이 갚아야 할 돈은 채권이 되어 이리저리 팔리기 시작한다.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불량 채권이 되면 추심이 심해진다. 불량 채권 추심이 심해지면 보통은 남의 탓으로 돌린다. 주변 가족부터 시작하여 모든 대상이 돈으로만 보인다.
"그냥 현금으로 주면 안돼?"
"그래도 통장으로 입금시키는 것이 덜 위험하잖아"
"아니 그냥 바로 가져다 줄려고 그랬지."
통장으로 거래하면 짜증 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증빙이 남기 때문이다. 비록 법무사 등을 찾아가서 공증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귀찮게 될 수도 있다. Bar를 운영하면서 받는 현금은 카드결제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카드로 결제하면 그나마 신한카드의 경우 바로 다음날 늦어도 2일 후에 입금되지만 현대카드는 무척이나 늦게 들어온다. 손님이 가끔 적지 않은 금액을 현대카드로 결제할 때 결제기의 문제가 있다고 다른 카드 결제를 권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반기에 한번 하는 부가가치세 계산이나 종합소득세 모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현금뿐이다. 그래서 현금이 좋다.
"알았어. 내 계좌번호는..."
"지금 넣어줄게. 확인해봐 들어왔는지."
"통장 찍어볼게."
"앱 뱅킹 같은 거 안 해?"
"응 난 그런 거 몰라."
"그거 해놓으면 편한데."
"몰라 난 공인인증서도 없어."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처음 한 번이 힘들다. 여자에게 한 번 입금해주기 시작하면 한 번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들은 사랑했기에 돈을 건네준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돈을 받았기에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활이 반복되면 진짜 사랑이 뭔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5년 이상 이 생활을 하는 여자들 치고 돈에 휘둘리지 않은 주변 친구는 은애뿐이 없었다.
"일요일에는 어디 갈까?"
"몇 시에 일어날지 몰라서 일어나면 전화할게."
"오래간만에 야외 가면 좋겠는데"
"알았어"
"지금 나가야 될 것 같아. 있다가 전화할게"
입금을 시켜주었으니 내일은 조금 노력해서 일찍 일어나야 할 듯하다. 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손님이 조금 일찍 온다고 해서 가게를 열러 나가는 길이다. 한 번 오면 양주 한 병 이상 먹는 손님이라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수경이 저녁 먹었어?"
"아니요. 입맛이 없어서 못 먹었어요. 오빠는 맛있는 거 먹었어요?"
"참치 먹고 왔어."
"맛있었겠다. 나도 참치 먹을 줄 아는데."
"다음에 같이 먹자. 지금도 남자친구는 없어?"
"예 안 생기네요."
"수경이 정도면 금방 생길 텐데.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냐?"
"그러게요. 남자들한테 매력이 없나 봐요."
Bar에 오는 남자 대부분이 여자를 보러 오기 때문에 남자친구 있다고 말해서 매출에 좋을 이유가 없다. 가끔 상관없다고 말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쿨한 척 하는 것일 뿐.
몸의 가치
인간이 죽으면 먆은걸 남기는 것 같지만 영혼이 몸을 떠나면 육체는 그냥 고깃덩이다. 유통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은 이성이 존재할 때 그 의미가 있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이 죽은 후 얼려놓으면 사망 추정시간을 예측하기가 힘들어진다. 오랫동안 250여 명의 사람을 죽인 킬러 중에 리처드 쿠클린스키가 있었는데 그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죽인 피해자를 얼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아이스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사님! ~찍어주세요"
"아 예"
"mri예요"
"알았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환자의 얼굴을 보니 한심해 보인다. 저 몸뚱이는 패스트푸드로 가득 채워진 그런 남자다.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지금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저런 사람도 살겠다고 병원에 와서 진단을 받고 있다. 죽음으로 가는 암이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있지 않을지 몰라도 뇌졸중 같은 급행열차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 외모가 그 사람의 내적인 심리와 정서를 드러내는 사고방식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서도 드러난다.
내 주변에는 뚱뚱한 사람들을 둬야겠다.
머리가 반듯하고 밤새 잘 자는 그런 사람들.
캐시어스는 마르고 늘 배고픈 표정을 하고 있다. (중략)
자기 자신을 비웃고 자기 영혼을 경멸하는 것처럼 웃는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보고 다 웃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마음 깊이 편안하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매우 위험하다.
"수고하셨어요. 먼저 들어갈게요."
"박기사님 오늘 삼겹살 먹으러 갈건대 안 가실래요?"
"아니요. 집에 일이 있어서요. 맛있게들 드세요."
죄는 없지만 이 생각 없는 여자들과 쓸데없이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죄 많은 여자가 얼마나 반성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을 우발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실수가 발생한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에 차질이 생긴다. 나는 다른 연쇄 살인범과는 다르다. 연쇄 살인의 동기에는 일반적으로 성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지만 나는 그들을 벌하고 사회를 깨끗하게 정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나는 책임감 없는 여자가 싫다.
"아빠 배고파요."
"이 새끼가.. 알아서 찾아먹어 "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돈 가지고 도망간 니 엄나나 찾아와."
엄마가 집에 있는 돈과 전세금을 몰래 빼 도망간 이후에 원룸을 전전하면서 산지 벌써 2년째이다. 몸으로 일해서 먹고살았지만 그래도 책임감이 있었던 아빠는 엄마가 도망간 이후에 365일 술에 취해 살아왔다. 폭력적인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술만 마시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해왔다. 폭력의 강도는 점차로 강해졌다. 맞는 사람도 때리는 사람도 모두 폭력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반성 좀 했어?"
"할 말이 없겠지. 너 같은 여자가 있기에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거야."
"약한척하면서 원하는 것을 다 챙기는 버러지 같은 족속들."
"뭐 상관은 없어."
"다섯 시간 정도 남은 거 같으니까."
"시간은 소중하지."
이 남자는 나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 처지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가. 저 남자의 표정이나 말투로 봐서 고통 없이 죽일 것 같지 않다.
다음 대상은 내 실수로 인해 바뀐 그 여자를 찾아야 할 듯하다. 보통은 포털 등에서 자신의 고민을 올린 것을 보고 대상을 물색한다. 칼로 위협하던가 억지로 납치를 하는 방법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대상이 결정되면 시간을 투자해 끊임없이 그 뒤를 쫓는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일수록 빈틈이 많이 생긴다. 문제가 있는 여성의 경우는 대부분 술을 좋아하던가 술을 좋아하는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심프슨이 발견한 클로로포름은 에테르보다 냄새가 좋고 기분 좋은 무의식으로 유도하기에 좋은 마취제다. 클로포름을 사용하면 좀 더 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도준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지문이나 장문, 바퀴 자국, 발자국, 낯선 섬유조직 등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가 된 사례는 어디인가 있다. 이번 사건은 이상하게 깨끗하다. 강간의 흔적도 없고 실수할만한 어떤 것ㄷ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의학적인 지식도 있는 듯 보인다. 냉동상태에서 발견된 사체가 최근 5년 사이에 5건이 발생했다. 연쇄 살인범의 경우 그 살인에 대한 쾌감 때문에 살인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기 마련이다. 같은 사건이라면 이 범인은 대상이 선택되면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하고 깔끔한 처리를 했다. 사체에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DNA도 나오지 않았으니 DNA 데이터 뱅크와 대조해볼 수도 없었다.
"진형사 내가 5명 비교해보라고 했잖아. 어떻게 됐어?"
"예 피해자 프로파일을 보니까 3명이 술집을 운영한 적이 있고 한 명은 미용사, 다른 한 명은 무직이었습니다."
"3명이 술집을 운영했다고?"
"예 두 명은 Bar를 한 명은 단란주점을 운영하였더라고요. 매춘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같이 그냥 술집 여자가 싫은 건가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닐 거야. 아마 주변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혐의점 같은 것은 발견하기 힘들었을 거야."
"예 맞아요."
"범인은 어떤 기억 때문인 지는 몰라도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인하는 거야."
"목적의식이요?"
"아마도 피해자와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어. 그리고 상당히 냉정하고 술 같은 약물에 의존하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선 피해자와 사귄 경험이 있는 남자들을 찾아보고 금전적인 피해나 결별시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해봐."
"범인은 의료업계 종사자일 가능성이 크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쯤 될 가능성이 커."
"박형사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예 팀장님 이번 사건으로 보면 상당히 활동적인 남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범인을 남성으로 국한 짓는 거야?"
"여성의 경우 좀 더 은밀한 방법을 써서 살해하고 보통은 용의자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편입니다."
"그렇긴 하지 여자의 경우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는 드물지. 설사 모르는 사람을 살해한다 치더라도 약자를 고르는 경우가 많고."
나는 어릴 때 특이한 사람을 좋아했었다. 가장 먼저 좋아했던 인물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왕립 진료소의 외과의 조셉 벨 박사다. 일명 '뒤셀도르프의 뱀파이어'로 불리던 그 사람은 환자의 신상 카드를 보지도 않고 환자의 습관과 직업, 국적, 때로는 이름까지 맞히기까지 했다. 이런 캐릭터는 일본 드라마 '마을 의사 점보'에서도 차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셉 벨은 명탐정 홈즈의 작가인 코난 도일의 스승이기도 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만들어낼 때 참조한 인물이 바로 그이다.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6개월 전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던 택배기사의 손을 보고 이전 직업을 추측해서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다. 목수의 손에 난 굳은 살은 택배기사의 손에난 굳은 살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다음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그놈의 심리적 특성은 무엇인지 빨리 파악해야 한다.
심리학적인 분석 방법을 적용해 개인의 미래 행동을 실제로 예측하는 일이 2차 세계대전중에 있었다. 1943년 OSS(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가 정신병리학자인 월터 방어 박사에게 아돌프 히 들러의 '심리-행동적 특성'을 추정해달라고 의뢰한 적이 있다. 랑어는 '히틀러가 미래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보고서에는 연합군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될 때 히틀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범인 역시 자신에게 혐의가 오기 시작하면 자살할 확률이 커보인다. 범인이 생각하는 직업은 자신이 신념대로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런 생계수단에 불과할 것이다.
"진형사! 최근 보름 동안 서울에서 실종 신고된 20~40세 사이의 여성 리스트 좀 찾아봐."
"실종 신고된 여성이요?"
"응 그리고 그 여성 중에 남자친구와 최근 헤어졌거나 유흥업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주변을 집중적으로 캐보고."
"평소 생활이 자신 소득에 비해 과하게 소비하나도 확인해보고."
"아 그리고 박형사님 안암도 유수지에서 사체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살해 방법이 유사하다고 하던데요?"
"그래? 거기가 김포서 관할이지? 협조공문 보내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