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수경
세상에 잘못된 것은 없다. 아니 잘못된 것은 너무 많다. 나정도면 좋은 가방을 들고, 수입차정도 타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 먹고 돈에 대한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둥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 착실히 모아서 결혼하고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남자 만나면 결혼할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귀는 남자는 조금더 오래갈줄 알았는데 금방 문제가 발생했다.
"가게는 내놓았다더니 아직도 안팔린거야?"
"응 요즘 불황이잖아. 잘 안나간대."
"계속 마이너스라며 그럼 손해보더라도 팔고 그냥 일하는것이 낫지 않아?"
"조금만 기다려봐."
"벌써 8개월째잖아. 조금씩 빌려간게 벌써 1,700만원이나 돼."
"그까짓 돈가지고 자꾸 생색낼거야?"
"그까짓 돈? 넌 그 돈도 없어서 나한테 빌리잖아."
"미영이 남자친구는 빚 5,000만원도 갚아줬대. 그정도도 아니고 말야."
"왜 비교해? 인생은 각기 살아가는거야.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같은 인생을 살아?"
"돈 빌려준 거 가지고 생색내면서 말할거라면 하지마."
"이럴때 보면 정말 철면피다."
"철면피? 꺼져!"
"돈도 없다면서 가방은 왜사는거야? 힘들면 절약해야지."
"듣기 싫다니까?"
"내가 틀린말했어?"
"너한테 그런말 듣고 싶지 않다니까.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참견안하는데 니가 뭔데?"
"나? 돈빌려준 남자친구."
"내가 치사해서 돈을 줘버려야지."
"치사해? 와 진짜 얼굴 두껍다."
"우리 몇일동안 보지 말자. 찾아오지마."
저렇게 생색내는 남자가 제일 싫다. 내가 억지로 빼앗은건가? 자신이 직접 입금시켜주고 내 인생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방을 사든 말든 술을 마시던 말던간에 지가 뭐라고 참견하는지..
"오빠 오랜만이네? 왜이렇게 안온거야?"
"부산 출장 갔었어."
"그때 사귄다는 여자친구랑은 잘 만나?"
"헤어졌어."
"왜? 결혼까지 할거라며."
"돈 문제때문에."
"돈? 왜? 왜?"
"여자친구에게 빚이 좀 있었거든 그래서 빌라에서 시작하자고 했더니 자기 친구들과 비교하잖아."
"빌라에서 시작하는것이 어때서?"
"몰라 여자들은 왜 그렇게 비교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여자지만 그런 여자들이 싫던데?"
"여자들이 다 너같지는 않나봐."
"속상하겠다. 오늘 뭐줄까?"
"오늘 꼬냑 마실래."
"알았어 음료는 우롱차지. 안주는 과일괜찮아?"
"응"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야기는 말하기가 쉽다. 물론 나도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런데 사람이 욕심이 있고 편하게 살고 싶은게 잘못이라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 사회의 부조리는 적지 않지만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다가 자신에게 닥치면 일어서는 것이 한국 사람이니까.
기다림
내가 대상을 정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야근이 있는 날의 다음날은 쉬기 때문에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대상을 사진을 찍고 이동루트를 계산하고 누구와 만나는지 어떤 사람과 친한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번 대상 역시 술집을 운영하는 여자다. 저런 생활을 하는 여자중에는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사람에 대하는 것을 보면 이중성이 있다.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남자와 여자를 대하는데 있어서 왜곡된 시각이 불편할 정도다. 남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이 아닌 돈이라는 것을 염두에둔 삐뚤어진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여자의 생활패턴은 상당히 단순하다. 가게로 출근했다가 술이 적지 않게 취한 상태에서 퇴근하면 2일에 하루는 또 술을 마시러 음식점으로 향한다. 취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주문하고 더이상 마실 수 없을정도로 취하면 그제서야 일어난다. 밤에 남자와 대화하는 직업을 가졌으나 그런 소양을 가지지 못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 하다. 서비스업에 종사할 소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그 일을 함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성격이 점점 왜곡되어간다. 땀 한방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줄 모른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 특유의 괴물들이 항상 존재했다. 난 왜곡된 그런 자아를 가진 괴물이 아닌 잠재적으로 문제가 있을 그런 여성을 제거하는 일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자신과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여성들은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나의 어머니가 그런 존재다.
"내가 너만 임신하지 않았다면 이꼴이 안되었을거야."
"엄만 아빨 사랑하지 않았어?"
"사랑 그런건 없어. 술마시다가 눈맞아서 몇번 만나고 그러다가 잠자리까지 간거지."
"그래도 아빠는 열심이 일하잖아."
"열심? 같은 것은 의미없어 잘살아야지. 이꼴이 뭐야. 이러다가 40이 되고 50되면 더이상 희망이 없을거야."
"그런말 안하면 안돼? 나도 있잖아."
"너때문에 원하지 않은 결혼한거야. 아무튼 밥솥에 밥 있으니까 알아서 챙겨먹어. 난 친구 만나기로 했어."
엄마는 집안일에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아빠가 벌어오는 돈의 대부분은 엄마가 친구만나는데 써버렸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소심한 성격에 친구도 거의 없어서 엄마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것 같다. 어릴때부터 방에 혼자 남겨졌던 나는 조그마한 집이지만 그 빈 공간의 암흑이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동네 아이들 대부분 학원을 가느라 같이 놀시간도 없었다. 반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모르는 엄마는 가끔 반찬가게에서 3~4개정도 반찬을 사놓는 것이 전부다. 밥솥의 성능이 좋지 못해서 밥을 해놓으면 하루만에 메말라서 금방 딱딱해졌다. 다른 아이들은 주말이 되면 놀이공원도 가고 수영장도 가는데 나는 거의 매일 집에 혼자 남겨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아빠는 얼굴보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주말이면 더 바쁘다. 전화통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이번주는 부산에 갈 모양이다.
은애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난 그날 수경이집에 갔다가 나올때 갑자기 뒤에서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았는데 이상한 냄새와 함께 기절했던 것 같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움직이는 차안에서 눈이 떠졌다. 손을 뒤로한채 묶인 상태였고 발은 두손에 연결되어 묶여있는 것 같다. 머리가 아직 멍하지만 살기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트렁크 공간이 평평하면서도 천장이 조금 높은 것으로 보아 SUV같다. 저 남자가 눈치채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맞다. 뒷주머니에 봉지 카터가 있었다. 칼날이 조금뿐이 없지만 시간만 있다면 손을 묶은 끈정도는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건가?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일이죠?"
"안녕하세요. 음주단속중입니다."
"수고하시네요."
"이곳에 대고 '후'하고 불어주세요."
"후!!" 짦고 강하게 불었다. 트렁크에 여자가 있지만 아직 깨지 못했을 것이다.
"삐이익"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가 멍해지기 때문이다.
누구지? 납치범과 공범인가? 그렇다면 움직이면 위험할 수 있다. 뒷주머니에서 봉지 카터를 꺼내서 열심히 손에 묶인 끈을 자르고 있었다. 조금씩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싸이렌 소리같은것도 들리는 것 같은데 확신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지금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다. 3~4분쯤 지났을까? 손이 자유로워졌다. 발목에 묶인 끈을 풀고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트렁크 어딘가에 안에서 열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더듬더듬 찾기 시작했지만 10여분이 지나도 좀처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야광색 레버가 눈에 띄였다. 저건가? 아래로 내렸더니 짦은 소리와 함께 트렁크 잠김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발버둥 치는 바람에 충분히 마취하지 못한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잘 묶어두었으니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집까지 가는길은 이제 10여분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트렁크가 열렸다는 경고창이 뜬거지? 고개를 돌려 룸미러로 보니 트렁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일반 여성이 발버둥 쳐서 풀 수 있는 매듭을 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한거지? 인적이 뜸해지긴 했지만 이곳은 위험하다. 도로에 CCTV도 있고 어딘가에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트렁크를 천천히 열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변을 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만약 뛰어내리면 어딘가 부러질지도 모르는데 다시 잡혀갈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야 하지? 트렁크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깨끗하게 트렁크가 비어있는 차는 처음이다. 이 납치범은 어떤 사람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
이제 조금만 가면 내가 작업하는 곳이 나온다. 거기까지만 가면 오늘의 실수는 만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