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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민족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방정식이 달라졌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법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전 세계 어느냐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자의에 의해서 변화한 것도 아니고 일본에 의해 봉건시대가 무너지면서 계급사회는 급속하게 해체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에 대부분의 토지는 배분이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이 전쟁둥이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다. 비교할만한 대상이 많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왔던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꼬 가정을 이루었으며 전형적인 한국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일터와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서 세계를 본다. 그렇게 본 세계는 우물 안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가끔씩 우물 위에서 던져주는 언론들의 메시지를 보고 세상은 이렇게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 정확한 것도 아니다. 다양한 곳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곳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나름 여유도 있으면서 6070세대들이기에 과거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한국의 극심한 경쟁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기존 질서를 완전하게 무너트리는 과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즉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정치인의 집안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나오고 음식을 하는 집안에서는 대를 이어서 음식을 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장인의 관점이라고 볼 수가 있지만 문화적으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한국은 이미 전 세대들이 자신들도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누구나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경험하면서 자라난다. 다른 사람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국가보다 자신의 소득에 비해 과한 명품소비를 하고 굳이 비싼 차량을 구입하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스스로를 소비를 통해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신이 성장하기보다 육체가 성장하는 것이 더 빨랐던 한국에서 교육이란 소양이나 철학적인 관점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인력이 필요한 사회에 공급을 위한 교육시스템으로 작동을 했다. 그 결과 정신은 성장하지 못하고 오로지 사회적 위치를 점하기 위한 순위경쟁으로 몰렸다. 다양한 삶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채 한국은 나름 경제성장을 해왔다. 그 경제성장이 21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리더가 없었다.


다른 국가의 사람들은 그냥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회적으로 명예도 얻어야 하고 경제적인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누구에게나 미친 듯이 노력을 하면 나라고 안될 것이 있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부를 물려주고 사회적 위치 역시 물려주기 시작했다. 이는 사시폐지와 로스클제도 도입 같은 것과 별개의 문제다. 1950년을 기준으로 2세대가 넘게 진행이 되었고 3세대가 진행이 되고 있다. 1~2세대 만에 부와 사회적 위치의 차이는 절대적으로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3세대가 되면 그 격차는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2010년을 기준으로 3세대에게 부와 사회적 위치가 세습되면서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격차를 보면서 자라났다. 이미 다음 세대가 벌 수 있는 돈과 사회적 위치는 거의 정해져 버렸다. 이런 사회에서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정말 이상한 것이다. 어떤 혜택을 주더라도 결정은 바뀌지 않는다. 여기에서 왜곡이 벌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하면 남들만큼 하려는 것이다. 결심한 사람들이 하려는 남들처럼 이라는 것은 이미 전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기준이 높다. 아예 포기하고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제외를 해버리고 난 후의 통계다.


대다수가 의대를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는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게 만들어버린다. 어차피 자신이 안될 것은 선택하지 않고 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신도 그런 위치에 올라가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앞선 1.5세대들까지 그런 한국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새로운 한민족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 직면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부가 세대를 넘어가면서 부가 축적되고 이는 다른 형태의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계급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자면 끊임없이 위로 상승하려는 욕구보다는 삶에서 가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고 부모와 조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다. 어차피 선택에서 바꿀 수가 없다면 변화된 사회에 적응해 가는 신한민족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새로운 방정식이 만들어지고 있기에 저출산의 대응의 아니라 선택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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