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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4. 2017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쓰다.

지니어스, 작가와 편집자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만나게 된 영화 지니어스

주로 다른 이에게 영화를 추천하는 입장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영화를 추천하는 것은 조금은 어렵다. 대부분의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영화를 추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작가의 삶을 영위하고 있거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지니어스는 꼭 한 번쯤은 봐야 할 영화다.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토머스 울프의 삶을 그린 지니어스는 소설과 관련된 두 사람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작가는 토머스 울프의 문장처럼 쓰면서 살고, 살면서 쓴다. 그것이 작가의 삶이다. 누구나 글을 쓰지만 의미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가가 작품을 쓰는 것은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기 때문이고 독자들이 공감해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 혼자 쓰고 혼자만 감상하는 것은 일기다. 


1929년 미국은 경제 혼란기이며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시기이기도 하다. 그해는 토마스 울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만난다. 가슴으로 읽고 독자에게 좋은 책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편집자 맥스 퍼킨스를 만난 것이다. 영미 문학사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토머스 울프는 꼭 한 번 거론해야 할 작가들로 비중이 크다. 이 세명을 모두 만났으며 독자들에게 알린 사람은 보이지 않은 손을 가진 맥스 퍼킨스였다. 


다른 출판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그의 원고를 보고 천재성을 알아본 맥스 퍼킨스는 선인세 500달러를 주고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토머스 울프를 세상에 알린 작품은 '천사여 고향을 보라 (Look Homeward, Angel)'로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는 소설이다. 1930년 미국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작가의 불안과 좌절을 잘 표현해냈다. 


브루클린에서 지낸 4년간, 무덤처럼 어두운 지하실에서 울프는 오로지 산처럼 쌓인 원고를 끝도 없이 쓰고 있었던 것이다. - 쓰면서 살았고, 살면서 썼다. 


그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연인 앨린 번스타인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대 장치가였던 그녀는 안정적인 집과 가족, 품위를 모두 버리고 그를 선택했다. 작가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쓰고 만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는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광적인 이면이 있다. 번스타인에게 토머스 울프는 자신의 분신이며 사랑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 그의 성공은 그를 누군가와 나누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그녀는 그걸 바랬지만 동시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랬다. 

토머스 울프와 맥스 퍼킨스, 두 남자는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해주었으며 마음으로 지지해주었다. 작가들은 써야 살아간다. 그것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쓰기에 살아있고 살아있기에 쓸 수 있다. 쓰다 보면 더 쓰고 싶어 진다. 영감과 엄청난 창작열을 가지고 있었던 토머스 울프는 그 힘으로 인생을 불태웠으며 펜의 힘이 야수처럼 겉으로 드러난 사람이다. 주드 로가 그 모습을 잘 표현해냈는데 자유분방한 예술가였던 그는 광기가 있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런 그를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 그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와 절망감을 영화 속에서 입체감 있게 잘 그려냈다. 

지금도 옆에는 여러 권의 책이 쌓여 있다. 매일 읽고 서평을 쓰고 다시 어딘가에 꽂아 놓지만 매번 옆에는 새로 출간된 책이 쌓여 간다. 필자의 경우 출간된 책을 만나지만 맥스 퍼킨스는 날원고를 옆에 쌓아두고 살았다. 냉철하면서도 창작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거들긴 하지만 살려내는 정도의 역할을 했던 맥스 퍼킨스는 매일의 삶이 즐거웠지만 고단했을 듯하다. 그런 그를 위로하고 가정을 지키는 따뜻한 여인 극작가 루이스는 토머스 울프의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숨겨진 또 다른 조력자이기도 하다. 

작가를 포함하여 예술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런 독특함은 때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왜 상처가 되는지 모른다. 의도하지도 않았고 왜 그것이 상처가 되는지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가감 없이 작품에 표현한다. 그것은 보통의 삶에서도 날 것의 느낌이 묻어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지니어스에서는 토머스 울프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다른 작가들의 말과 표현을 빌리기도 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나 토머스 울프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문체로 소설을 썼던 사람이다. 그의 문체는 짦으면서 건조하고 명료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다. 맥스 퍼킨스에게 조언을 해주던 그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작가는 자신을 삼키게 될 그 창작의 혼을 조심해야 한다. 멀리하면 작품을 쓸 수 없지만 너무 가까이하면 언젠가 그 혼이 자신을 삼키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가 읽어주고 평해주고 소설 속의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며 즐거움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상과 캐릭터가 살아 숨 쉬길 바란다.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정말로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처럼 편집자가 될 수 있고 때론 연인, 부모, 친구, 자식이 되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인생 속에서 산의 정상은 누구나 올라가 보고 싶은 곳이다. 사람은 자신이 올라가고 싶은 자신만의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은 함께 올라갈 때 더 의미가 있다. 기쁨이 배가 되고 괴로울 때는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산을 같이 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인생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같이 한 인생의 보트를 함께 밀며, 함께 정상을 정복한 그 나날들을 기억하겠다는 토마스 울프의 편지를 읽으며 맥스 퍼킨스는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중절모를 벗으며 눈물을 흘린다. 


작가의 삶은 오늘도 쓰기에 존재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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