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홈커밍

다운 사이징 되었지만 유쾌함은 커졌다.

스파이더맨은 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서민적이면서 헝그리함을 지향한다. 돈이 능력인 아이언맨이나 화나면 무제한 급으로 광분하는 헐크, 전투능력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캡틴 아메리카, 플래시맨 정도는 아니지만 꽤 빠른 퀵 실버, 무제한 급의 사기 캐릭터 스칼렛 위치, 능력의 한계치가 정해지지 않은 더 비전등 모두 캐릭터 설정이 명확하고 그다지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부분 자신의 얼굴을 내놓고 싸운다.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히어로는 대부분 DC Comics사에 있다.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얼굴을 당당히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돈 없는 히어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자신만의 왕국에서 지내지만 한 달 벌어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서민 히어로 스파이더맨은 자신을 노출하는 순간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 다닐 때는 과학 영재 소리까지 들었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NASA 같은 곳에 들어가기는커녕 신문사에 자신이 설정한 사진을 기고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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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가지 인생을 병행하면서 살아간다. 피터 파커로서의 인생과 서민 히어로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인생이다. 두 가지 인생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인생의 선을 긋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멘토로서의 역할을 아이언맨과 해피가 맡아준 셈이다. 다시 리부트 되다시피 한 스파이더맨 홈 커밍은 그런 시작점을 그리고 있다. 슈퍼 거미에 물리는 과정 같은 것은 이전에 많이 다루었기에 여기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 인간 피터 파커와 평범한 삶과 괴리가 있는 스파이더맨으로의 변신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보여준다. 하이틴 히어로물이기에 어벤저스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배트맨 시리즈처럼 무겁지 않다. 그냥 가볍고 즐겁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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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특성상 다소 유치한 설정이 필요했다. 피터 파커는 아직 어린 청소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뭐 킥 애스처럼 청소년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고어하면서 피가 난무한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스파이더맨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히어로를 보면서 동경을 하기도 하지만 그 동경에는 무한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그런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나 옮고 그름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실수 투성이 사람이어서 좀 더 정겹다. 게다가 그가 히어로로서 안착하기까지 토니 스타크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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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가 히어로인 아이언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제한 급으로 만들어내는 슈트에 있다. 그러나 슈퍼거미에 물린 피터 파커는 신체적인 능력이 뒷받침되는 사람이다. 전투 능력을 제외하고 본다면 캡틴 아메리카에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신체의 남다른 위험 센서는 평범한 인간을 확실히 초월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슈트에 상당 부분을 의지 한다. 이전 작품까지 스파이더맨 슈트는 말 그대로 그를 감추어주는 역할에 불과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를 감추어주는 것을 넘어서 신체적인 능력과 판단 능력 등을 높여주는 데 사용이 된다.


현대인들에게 세탁기와 냉장고, 각종 편의기기 등을 빼놓으면 무척 불편해질 것이다. 없다고 아무것도 못하지는 않지만 무척 불편하다. 피터 파커가 상당한 기능을 가진 슈트에 의지를 하는 순간 그것이 없어졌을 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히어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가 이런 조언을 하다.


"만약 슈트가 없어서 문제가 된다면 더욱더 그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토니 스타크가 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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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히어로 물이라서 그런지 악역도 인간적이다. 그가 동료를 죽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착오에 의해 무기를 잘못 선택한 결과에 불과했고 대기업에 치여 일거리를 잃은 중소기업 대표로서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과 무기 불법적으로 팔았을 뿐이다. 집에서는 그냥 자상한 아빠이고 일터에서는 부하들의 잘못을 덮어줄 수 있는 그런 서민적인 사람이다. 나름 도둑질도 비즈니스라고 그것을 밝혀낸 스파이더맨이 미웠을 뿐이다. 게다가 제안까지 한다. 자신을 내버려두면 자신도 깨끗이 잊겠다고 말이다.


요즘에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했다면 십여 년 전부터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 대신에 소신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나쁜 놈들의 생각이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그들의 삶도 담아내고 있다.


쌩고생하는 것은 이전 작품과 비슷하긴 하지만 무척 가벼워졌다. 마치 차량의 엔진을 다운 사이징 했지만 출력은 좋아진 것처럼 무거움은 덜어내고 유쾌함을 넣은 덕분에 즐겁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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