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1,440분, 86,400초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오늘 하루 참 길다는 사람도 있고 무척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하루에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무 일 하지 않고도 계속 살아가는 시간을 물리학적으로 보면 간단하지 않다. 시간에는 방향성이 있다. 그래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고도 부른다. 무질서도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시간의 방향을 가리키는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방향,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는 방향인 심리적 시간의 화살과 우주가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것이라는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이다.
하루라는 영화는 물리학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 생각해보자 컵을 테이블에 얹어 놓았는데 불안정한 상태에서 떨어져서 깨졌다고 치면 그걸 다시 온전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열역학 제2법칙에서는 모든 닫힌 체계에서 무질서도 또는 엔트로피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항상 증가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온전한 상태의 컵은 높은 질서의 상태고 아래로 떨어져서 깨진 컵은 무질서한 상태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쉽게 컵이 깨진 미래의 상태로 갈 수 있지만 그 역으로는 갈 수가 없다.
남들을 돕는데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의사 준영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 딸을 잘 챙기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생일날 공항에 도착해서 약속 장소로 가던 중 딸은 택시에 치여 숨지게 되는데 그 사고를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사고로 아내를 잃는 그날을 반복하는 남자 민철이 있다. 여기에 이 둘을 매일같이 죽여야 하는 택시기사 강식이 있다.
두 남자는 딸과 아내를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모든 시도를 다 해보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수많은 시도로 인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세 남자는 모두 과거이면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간다. 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영화에서나 일반 동영상을 촬영하여 뒤로 감기를 해보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식의 움직임은 절대로 관찰될 수 없다. 하루는 바꿀 수 없는 역설의 패러독스를 사람의 힘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딸과 아내가 죽고 사고로 인해 무질서가 증가하는 까닭은 하루가 지나면서 우리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발버둥 치면서 그 모든 상황이 바뀌길 바라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것도 일정한 양의 에너지가 열의 형태로 발산되어 우주의 무질서의 총량을 증가시킨다. 물리학적으로 총량은 바뀌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매일 눈을 뜨면 딸과 아내가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 두 명이 벌이는 사투는 어떻게 보면 무질서한 가운데 발생한 에너지의 총량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이를 한 살 먹기 위해서는 12개월을 살아야 하고 1개월은 30일이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야 다음 하루가 온다. 하루하루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최악의 하루도 있지만 최고의 하루도 있다. 언젠가는 즐겁고 짜릿한 하루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을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