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

남자에게 갇힌 여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현란하다 혹은 여자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의도를 재생산하고 확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관점대로 해석한 영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인칭 액션에서 3인칭 액션으로 변화했다가 다시 1인칭 액션으로 변화했다는 그런 단편적인 것만 보고 있다. 과연 악녀의 주인공 숙희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운 여자였을까? 필자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시종일관 남자들과 싸우면서 그들을 제압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장르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편집의 장난처럼 보이기만 했다. 킬빌의 그녀를 답습하는 것처럼 액션은 한국 영화치고 괜찮다는 평가를 받으려는 듯 액션 시퀀스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 영화 치고는 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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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에서 처럼 과연 숙희는 악녀가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악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마치 남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용당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또다시 국정원의 프락치 같은 남자에게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악녀도 아닌 그냥 이용 도구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국정원에서 국가의 악과 같은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여자 킬러들을 키우고 있었다. 남자 위주의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 여자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대신한다는 그런 이분법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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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이용하기에 쉬운 대상이었다. 첫사랑인지 변하지 않는 사랑인지 모르지만 중상 역시 킬러로 숙희를 키웠고 잘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했던지 국정원에서 다시 키움을 당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여자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사회에 적응하는 척하면서 국정원이 시킨 일을 하기 위해 대기한다. 숙희의 삶은 악녀의 삶이 아니라 그냥 거짓된 삶이다. 그녀에게 볼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배 아파서 낳은 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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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과거의 연인을 잊고 일반 사람들과 동떨어진 삶을 유지해야 되는 그녀는 쉽게 현수와 인연을 만들고 결혼에까지 골인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남을 속여야 되는 스파이로서 숙희나 현수 역시 실패한 스파이이고 동정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들의 삶은 평범할 수가 없기에 평범하고 싶다는 욕망이 허황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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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숙희는 총과 칼을 잘 쓰도록 훈련받은 그냥 도구에 불과했을 뿐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꼭두각시처럼 무력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 의해 분노하면 무작정 적(모두 남자들)들을 죽이고 다닐 뿐이다. 쏘고 죽이고 자르고 찌른다. 그것이 악녀의 모습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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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킬빌 짝퉁으로 남기를 바랐던 것일까. 오토 바이트를 탄 채 누군가와 격투를 하고 자동차 보닛에 앉아서 핸들을 조종하면서 버스를 쫓아가는 장면은 조금 다른 액션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였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누군가를 암살하려고 하는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의 레베가 퍼거슨을 연상시켰으며 초반의 액션 장면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식상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악녀는 남자에게 갇힌 여자에 불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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