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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의 귀래정(歸來亭)

안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나는 이굉의 공간

5백여 년 전에 안동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안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원이엄마테마공원과 귀래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 내려간 한글 편지에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있으며 행촌 이암의 손자인 이증(李增 1419~1480)의 둘째 아들 이굉(李汯)은 집 앞의 두물머리인 와부탄에 1513년 귀래정(歸來亭)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01 귀래정으로 들어가는 이정표.JPG

이굉은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4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ㆍ상주 목사ㆍ개성 유수 등을 지냈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었는데 벼슬에서 물러난 이굉은 안동으로 낙향하여 부성(府城)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뜻을 취해 당호를 ‘귀래정’이라 하였다.

02 원이엄마테마공원.JPG

귀래정의 옆에는 테마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는데 이 공원이 조성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원이엄마'는 430년 전 조선중기 안동시 정하동 고성이 씨 귀래정파 문중의 며느리로, 1586년 31살의 젊은 나이로 남편 이응태가 세상을 뜨자 애틋한 사랑을 담은 편지와 남편 병구완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들었던 미투리를 함께 관속에 넣었다고 한다.

03 원이엄마테마공원02.JPG

원이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해보지만 소설로는 능소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 내려간 한글 편지에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04 원이엄마테마공원03.JPG


05 귀래정파 문중의 며느리.JPG

이곳이 발견된 것은 1998년 정상동택지개발 때였다고 한다. 그 글을 읽어보니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절절하게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06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JPG

원이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저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된 적이 있으며 고고학 잡지의 표지논문에 실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07 귀래정으로 들어가는 입구.JPG

원이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옆에 자리한 귀래정으로 가본다. 이굉이라는 사람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살았다고 한다. 안동에 유서 깊은 집안이 한 두 집이 아니겠지만 명문가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08 안동 귀래정.JPG

명문가로 할 때 공자는 훌륭한 삶을 15살에 뜻을 세우고(立志), 30살에 일어서고(而立), 40살에 유혹에 빠지지 않고(不惑), 50살에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60살에 귀가 순하게 되는(耳順)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09 귀래정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JPG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안동에서 이 정자는 강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집안사람들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추위가 매서울수록 봄의 따뜻함이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0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연결된 의미.JPG

귀래정은 앞면 2칸·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11 이굉이 세운 귀래정.JPG

사람의 삶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여성의 삶과 한 남성의 삶이 겹쳐져 있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시련이라는 것은 사람을 완성하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한다. 유독 추운 겨울날에 안동 귀래정에서 사람에게 꽃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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