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승부를 넘어선 인생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사각링
사람의 인생은 꼭 승부가 결정이 나야 할까. 어떤 스포츠나 게임은 승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인생 전반으로 보면 승부로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으로 성공을 생각한다. 성공과 승부는 꼭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승부에서 이겨야 성공과도 연결이 되기도 한다. 영화 승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AI를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은 바로 고통과 절망이라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지금이야 예전과 달리 바둑에 대한 관심이 시들시들하지만 세계 최고 바득 대회에서 국내 최초 우승자가 된 조훈현과 그의 뒤를 잇는 이창호의 시대는 바둑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많이 없었던 그 시절에 일본에서 바둑은 인기를 끌었다. 일본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 1980년대에는 전 세계에도 바둑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시기에 한국에서 바둑을 이끌던 조훈현은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 시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승부라는 영화다.
바둑에 별다른 관심은 없었지만 바둑에 관심을 가지게 한 만화로 고스트바둑왕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바둑의 신이 어떤 바둑의 초보인 후지와라노 사이가 추구하는 바둑의 극의를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바둑에서는 신의 존재가 두는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새로운 한수를 의미한 것이 신수다. 모든 것에는 정석이 있고 정석이 아닌 것들도 있다. 수학의 정석이 괜찮은 수학책인지 학교 다닐 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정석으로만 살아간다면 새로운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 조훈현은 바둑의 정석으로 배워 싸움의 기질이 충만한 사람이다.
근본도 없는 바둑을 배웠지만 독특한 바둑을 구사하는 사람이 이창호다. 2010년대 중반에 AI에게 패배할 때까지 바둑 하면 이창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거의 모든 게임에서 컴퓨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 수많은 수가 있다는 바둑에서조차 넘어선 AI는 이제 정확한 계산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AI가 사용하는 전력량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에는 인간이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간이 식사를 하고 그걸 기반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봤을 때 AI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한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비교도 할 수가 없다.
만약 모든 사람이 정석으로만 길을 걷는다면 인간은 그렇게 발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의외의 길을 걷다가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에 생각지도 못한 신수를 두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조훈현은 아마도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고 두려운 것이 없었을 것이다. 실패를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실패를 했을 때 그 파괴력이 훨씬 크다. 스물일곱 살이던 1980년에는 9관왕을 달성했고, 1982년에는 한국 최초의 9단에 오르며 10관왕을, 1986년에는 11관왕을 기록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국내엔 적수가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세상에 전능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바둑황제로서의 삶이 무너진 조훈현은 무기력한 사람 그 자체였다. 자기 이지지 상실에서 오는 깊은 우울감은 때론 외부로 폭발이 될 때 폭력성과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 누군가를 대상으로 범죄를 하는 이면에도 이런 부분도 있다. 자신이 길이 한 번도 틀리지 않아도 성장한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가 지옥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성과에 의해 가치를 평가받는 시대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된다. 필자는 누군가와 비교가 되는 대상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의 길을 만들려고 한다.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니 그들이 말하는 정석대로의 삶에서는 만족감보다 불만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쓸모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것들은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것들에 있다. 무심코 흘려보았던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답 없는 삶에서 때론 의미 없이 둔 바둑돌이 열어주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