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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사찰, 서산 부석사

107일 만에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떠난 서산 부석사를 방문해 보다.

고려시대에 일본은 정치적으로 혹은 국가차원으로 보자면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는 통일되지 않는 국가의 느낌이 드는 나라였다. 한반도가 마한, 진한, 변한 등의 부족국가 연합을 넘어서 가야와 백제, 신라, 고구려의 국가형태를 갖추었고 통일신라에 의해 드디어 통일된 국가체계를 갖추게 된다. 역사 속에서는 고구려의 땅의 대부분이 중국에 귀속된 것에 대해 언급을 하지만 사실 그 시대에 고구려가 한민족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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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산 부석사에서는 아쉬운 일들이 일어났다. 647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온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107일간의 짧은 나들이를 끝내고 일본 간논지로 가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제로 약탈당했다고 보이는 불상이 서산 부석사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이지만 국제법에서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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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후에 찾은 부석사의 모습은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부석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서산지역에 바닷물이 깊숙하게 들어왔는데 그래서 마치 물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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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룬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우선 경제력이 하나로 합쳐지고 국방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시스템과 법이 안착이 된다는 의미다. 일본은 오랜 시간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부족국가에 가까운 왜인들은 수시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한반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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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에 있던 불상이 약탈당했다고 추정되는 시점은 1318년에 대마도에 본거지로 둔 왜구가 서산지역에 출몰했을 때라고 보고 있다. 이 불상은 잊혔다가 2012년 절도범이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보살상을 훔쳐서 국내로 가져왔다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불상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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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를 활용하여 만든 사찰인 부석사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신라시대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하고 있기도 하며 조선 건국 후 유금헌(柳琴軒)이 고려 왕조가 멸망한 후 낙향(落鄕)하여 별당(別堂)을 짓고 독서하다가 생을 마쳤는데, 그 후 승려 적감(赤感)이 그 별당을 절로 바꾸었고 서해안 바닷가 가운데에 바위섬처럼 떠 있으므로 절 이름을 부석사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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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는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 유금헌은 바로 조선 초에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제작한 류방택(柳方澤, 1320~140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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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간월도에 간월암을 창건한 무학대사는 서산이 좋았던 모양이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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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있고 녹색으로 가득 찬 이곳을 반지의 제왕의 요정들이 살고 있는 공간처럼 그려도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석탑과 그 사이로 올라가는 계단과 내린 운무가 어우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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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힘에 이끌린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다. 그런 이유는 시간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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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곳에 있었을지 모르는 바위와 점점 갈라지는 바위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긴 시간이지만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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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석사 불상은 대마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대마도의 언어와 제주도의 언어를 보면 비슷한 측면이 있다. 대마도는 일본보다 한국과 더 가까운 섬이다. 대마도로 떠났지만 그 불상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내려져 있으며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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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은 땅 속에 뿌리를 내려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정작 겉으로 보이는 소통을 하면서도 깊이 있는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연결이 되어있는 것일까. 서산 부석사에서의 5월은 소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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