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엄산 성주사

대사찰의 흔적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 이제 100세 시대를 코 앞에 두고 있다. 평균수명이 50세에 불과했던 한 세기 전과 비교하면 인간 수명의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100세를 기준으로 인간의 수명은 더디게 늘어나다가 대체 장기의 획기적인 발전이 수명의 변화를 만들어 낼 듯하다. 살아있는 사람이 상상하지 못한 시간인 1,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의 일부만 남겨둔 채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사찰이 보령의 신기슭에 있다. 사적 제307호로 지정된 성주사지는 기획전시실의 숭엄산 성주사로 처음 기획전시를 열어 그 속살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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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가 그 비밀스러운 모습을 처음 드러낸 것은 1968년으로 동국대학교박물관을 시작으로 1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1,000여 년간의 역사가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성주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백제시대 말의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성주사는 백제 오합사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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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는 창건 이전에는 중문과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이어진 형태로 지어졌지만 통일 신라시기 때 일어난 김헌창의 난 (822)등의 전란으로 불타 없어지고 다시 창건하면서 대규모로 사역을 확대하여 많은 승려들을 받아들였고 다시 중건 과정을 거쳐 삼천불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무려 2,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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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사찰 같은 건물을 건축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와이며 발굴 시 가장 많이 나오기도 한다. 성주사지에서는 백제 수막새를 비롯하여 그 영향을 받아 통일 신라시기에 만들어진 초기 수막새가 발굴되었다. 성주사가 대사찰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당의 선종의 법맥을 이은 무염 (800-888)이 창건하면서부터인데 40여 년간 성주사에서 주석하면서 선승들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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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에는 석탑도 남아 있지만 대표적인 문화재는 최치원이 글을 짓고 최인연이 글씨를 쓴 남혜화상백월보광탑비다. 글자 수가 5,120자에 달하며 높이는 4.55m에 이르는 이 비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비석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무염 대사를 기리기 위해 진성여왕이 최치원에게 글을 짓도록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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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0자의 글에는 탑비의 건립과정을 비롯하여 골품제, 통일신라시대 사회상과 무염의 생애와 업적이 빼곡히 담겨 있어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연구자료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탁본은 비(碑) 등에 새겨진 명문이나 서체를 전파하는 데 쓰였는데 탁본으로 전시된 남혜화상비는 작품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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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비의 파편들만 남아 있지만 남혜화상비보다 앞서 세워진 성주사비는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비석으로 발굴 과정에서 12개의 조각이 발견되어 원래의 크기와 전체 글자 수 2,100자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국립 부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에는 백제 헌왕태자를 언급하고 있고 대각간 김인문과의 연관성, 성주사의 백제시대 사찰의 존재를 의미하는 기반 자료로 생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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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은 초등학교 때 잠시 실습해보는 그런 기술이라고 생각되지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탁본이었다. 실물 크기의 정교한 복제물을 얻을 수 있어 사진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에도 고고학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고 목판인쇄나 석판인쇄가 시작된 이후에도 탁본은 비문 등의 유생의 글을 재생하는 가장 흔한 방법으로 쓰였다. 탁본은 서양보다 동양이 먼저 시작되었고 발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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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가장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소조보살좌상은 사찰 중심부에 있던 삼천불전에 봉안되었던 소조상 파편들이 대량으로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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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까지 그 사세를 유지해오던 성주사는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조금씩 쇠하였지만 임진왜란 이후까지 사찰이 유지되었지만 이후 17세기 중반 경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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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깨달음을 얻는 다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선종(禪宗) 불교 사상 위에 건립되었다. 백성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거대한 절터에는 1,000년의 세월이 아로새겨져 있다.


2017.08.10~10.22

보령박물관 기획전시실 1 (충청남도 보령시 대흥로 63)

입장시간 : 오전9시 ~ 오후 6시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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