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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국(沙伐國)

상주의 옛 이름과 소국이었던 시기의 왕릉, 삼층석탑, 박 씨 문중 재실

규모의 경제를 넘어서 한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부족사회에서 조금 더 규모가 커지게 되면 국가의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삼국시대를 형성하기 전까지 수많은 소국이 한반도에 존재했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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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는 북쪽에 자리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중국 한족에게 밀려서 내려올 때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추풍령을 넘으면 나오는 지역이다. 상주시에 있었던 사벌국은 신라지역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첨해왕 때에 사벌주를 취하여 주(州)를 설치하였고, 법흥왕 11년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고 상주로 삼았다가 진흥왕 18년 주를 폐하였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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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왕릉이 있었던 곳의 바로 옆에는 상산 박 씨의 문중의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재실은 숭의문과 영사전, 숭의각, 영사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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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박 씨(尙州 朴氏)의 시조인 박언창(朴彦昌)은 신라 경명왕 박승영(新羅 景明王 朴昇英)의 다섯째 아들로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지고 사벌주(沙伐州ㆍ지금의 상주)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다. 후에 상산박 씨의 시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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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商山)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의 옛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185년(신라 벌휴왕 2, 고구려 고국천왕 7) 사벌국(沙伐國: 혹은 사불국)으로 독립해 오다가 신라 첨해왕 때 정벌되어 상주(上州)로 고쳐 군주(君主)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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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 서쪽에 자리해서 상산이었던 상주시는 1012년(고려 현종 3) 다시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쳐서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가 조선이 개국하여 관찰사(觀察使)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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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박 씨의 재실의 옆으로 오면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 보인다. 화달리 삼층석탑은 1단의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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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탐은 각층의 몸도로가 지붕돌은 하나의 돌이며 몸돌에는 기둥 문양이 있으며, 지붕돌의 처마가 위로 올려져 있어서 균형감이 느껴진다. 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이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을 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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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는 사벌국왕릉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건립기념비에는 전 사벌왕릉이 사벌국의 왕이 묻혀 잇는 무덤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상주 일대의 토광묘유적을 참고해 보면 사벌국은 2~3세기대 사로국과 비교될만한 국력을 가졌고, 3세기 후반부터 사로국의 정치적 간섭을 받았지만 4세기 중엽까지 독자성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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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왕릉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8명 중 다섯째 아들인 언창(彦昌)의 무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신도비는 1945년 건립되었으며, 전체 높이 3.04m, 귀부 높이 45㎝, 너비 1.56m, 비신 높이 2.04m, 폭 60.25㎝, 두께 20.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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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창은 견훤의 합천ㆍ고령ㆍ영천ㆍ선산 등의 점거로 본국인 왕경(王京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이 고립상태에 빠지자, 918년 사벌동(沙伐洞)과 흔국촌(欣國村)을 본영으로 해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하여 왕이 되어 11년간 통치하다가 견훤의 침공을 받아 929년(경순왕 3) 패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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