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향교에서 예(藝)에 노닐며 편지를 보내기에 좋은 여름
자극적인 것이 아닌 아주 작은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힌들리지 않음이다. 사람이 쉽게 흔들리면 쉽게 유혹되고 쉽게 유혹되면 쉽게 실수를 하게 된다. 모든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변함이 없다. 옛 교육은 지금처럼 규격화하듯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모든 건물이 땅과 맞닿아 있어서 조금만 나가면 자연을 볼 수 있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여름이 내려앉은 함안향교는 느린 교육의 가치와 빠른 통찰을 할 수 있었던 과거의 교육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교육이란 자연과 자주 만나며 배움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안향교에 대한 설명은 조금씩 다른데 이곳에 소개된 자료에 의하면 조선왕조 건국과 함께 1392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14236년(세종 8)에 향교의 교관인 교도가 함안에 파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함안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함안향교와 칠원향교(漆原鄕校)가 있으며 칠원읍 용산리의 칠원향교는 1623년(인조 1)에 중건했다가 1760년(영조 36)에 또다시 이전하였으며, 1906년 칠원군이 폐군되어 함안향교에 속했다가 1961년 중수되었다.
그 시대의 건축물을 그 시대의 삶을 반영한다. 경제적인 수준마다 다르겠지만 향교나 서원은 적지 않은 예산이 투여되는 교육기관이었다.
동양건축은 중간의 경치를 지워 버리고 가까이에 있는 정원과 멀리 있는 풍경인 산만 보이도록 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시각적인 여백을 가져오도록 만들어두었다.
1년에 강수량이 많은 동양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기후대에 벼농사를 짓는 우리 건축은 가벼운 목구조를 사용하였다. 문화가 전파되면 건축에 반영된다.
향교 이후의 함안군에서는 지금의 함안초등학교가 1911년에 개교하였고 1914년에 칠원초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37년 함안공립농업전수학교가 개교하여 중등교육이 시작되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어 있을 때에는 함안을 지나 다른 지역을 가는 것이 수월했지만 함안은 따뜻한 지역으로 습지의 고장이기도 했다. 현재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길을 알고 있다.
함안향교의 뒤편으로는 작은 동산을 만들어서 마치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둔 것처럼 만들어두었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고 한다.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다. 문은 곧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예이고 행은 곧 실천이며, 충은 곧 말과 행동에서는 늘 진심을 따를 것이고 산은 곧 말과 행동이 일치할 것이다. 함안에서 함(咸)은 다함이다. 때론 전부를 다 보듯이 세상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