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인연
살인
트렁크가 열리더니 결국 뛰어내렸다. 시속 60km가 넘는 속도인데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욕구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넘은 듯하다.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나의 실수도 있었지만 저 여자의 성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겉으로는 과시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자신의 인생 하나 제대로 개척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알 있는데 계산착오다. 다행히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쫒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차를 세우고 안에서 클로로포름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칼을 꺼냈다.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여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을 돌아본다. 도심이 아닌 곳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범인이 가까이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위험한 행위이기도 하고 사람이 들을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도와줄 사람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오리려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소리 질러봤자 들을 사람 없어."
"누구 없어요. 미친놈이 쫒아와요."
"글쎄 그 미친놈이 누굴까."
갑자기 여자가 조용해졌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갈대 아래로 몸을 숨겼는데 조용히 벗어나고 싶은 것 같다. 여자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려온 것이 1초쯤 걸렸고 10시 방향이니 350미터 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자는 방향감각이 엉망일 것이다. 보통 두려움이 엄습하면 방향감각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까 봐 조용히 움직일 테니 많이 움직여봤자 50미터쯤 플러스 마이너스한다 치더라도 9시 방향과 12시 방향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토끼 몰이를 할 때다.
"그러게 인생 잘 살았어야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게 해."
"그 남자의 인생은 생각해봤어?"
저 미친놈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를 말하는 건가? 헤어졌다고 해서 살인청부를 할 정도의 남자는 아니었는데. 어디로 벗어나야 살 수 있을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둔탁한 캔소리. 맘소사 맥주캔을 밟은 모양이다.
"신호준거야? 당신과 나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은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주변에 뭐가 없을까? 은애는 더듬더듬 주변을 살펴봤다. 쇠로 된 볼이다.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1미터쯤 되는 쇠봉이 하나 있었다. 조용히 두 손으로 쇠봉을 잡고 그 놈이 가까이 오길 기다린다.
"어차피 도망갈 수 없으니 포기한 건가?"
"그래 그런 자세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좋아."
그 놈과 나사이의 거리가 20미터도 안남은 것 같다. 쇠봉을 준손에 힘을 넣었다. 한 방에 쓰러터리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내 바람일 뿐이다. 여자한테서 묘한 긴 잠감이 흘러나온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마취시켜 데려가기는 힘들 것 같아. 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조용하게 접근했다. 순간 둔탁한 고통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아!"
"나쁜 새끼야. 죽어!"
첫 번째의 일격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그 놈이 방어가 빨랐다. 두 번째의 일격은 고개를 숙이며 피했다. 허리를 노린 세 번째의 공격 역시 쇠봉을 빼앗기며 무위로 돌아갔다. 은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취시켜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남자는 은애를 쫒아가며 칼로 등에 갈비뼈를 칼을 찔러넣었다. 은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면서 손톰으로 남아의 목 부위를 긁었다. 은애는 남자의 제대로 된 얼굴을 처음 봤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듯한 무표정한 얼굴에서 차가운 공포가 느껴졌다.
"이런 이런 어쩔 수 없잖아. 이제 곧 폐에 피가 차오를 거야."
은애는 다시 일어서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숨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무언가 진한 것이 폐에 가득 차는 느낌이다. 고통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까." 남자는 천천히 여자의 뒤를 쫓아간다.
"왜 왜 나를.."
"그걸 몰라서 그래? 머 죽기 전이니까. 지훈이라고 잘 알잖아?"
지훈 누구지? 대체 기억이 안 난다. 아~ 수경이 전 남자친구 이름이 지훈이었다. 그럼 날 수경이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수경이 집에 갔다가 나온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맞다 저 남자는 날 수경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 이사 걸을 힘이 없다. 헛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끈적 끈적한 것이 손에 묻는다. 피다. 멀리서 소리가 들려온다. 자전거인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소리다.
"수경이 너는 사회의 필요악이야."
"나는... 나는.. 쿨럭" 은애는 수경이가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어차피 살기는 힘든 것 같다. 저 남자가 날 수경이라고 아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
은애는 숨을 헐떡 거리며 하늘을 보며 누었다. 죽을 때가 되면 온갖 일들이 모두 생각난다는데 난 그냥 평안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죽기 직전인가? 신체는 곱게 남겨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당신의 두 손가락에 내 흔적이 남아 잇거든."
산소를 공급해주는 폐가 그 기능을 멈추었다. 이어 산소를 나를 피를 펌프질 하는 심장의 기능도 멈추었다.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다. 손가락에 미세한 고통이 느껴졌다. 남자는 자신의 흔적이 묻어 있을 약지와 중지를 자르고 자전거를 탄 일행이 근처로 오기 전에 재빨리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