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에 몸과 마음을 돌아보기에 좋은 보은 속리산과 성보박물관
음식의 정점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것에 균형을 맞추면서도 맛의 균형과 영양의 균형을 이루는 곳이 아닐까. 그래서 조선왕실에서는 다양한 식문화를 교육하고 전파하는 상궁들이 있었다. 이들이 만든 밥상은 조선의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 왕과 왕비를 비롯한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그렇게 왕실에 전해져내려 오던 음식의 전통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단절이 되었다. 당시 왕실에서 일하던 궁녀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그중에 한 명에게 배운 사람이 지금 속리산에 터전을 잡았다.
보은 법주사가 자리한 속리산은 정말 오래간만에 방문해 본 곳이다. 충청북도에 자리한 한국관광공사에 글을 기고할 때 방문해 보고 오래간만의 방문이다. 이번의 방문에는 조금은 특별한 음식을 먼저 먹어보기로 생각을 했다. 백 년 가게로 지정된 음식점은 궁녀들에게 한식을 배운 창업주가 1949년에 대전 선화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1974년에 속리산에서 터전을 잡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져오고 있다.
속리산에서 나는 각양각색의 산나물과 버섯으로 차려진 40~45가지 반찬뿐만이 아니라 불고기와 생선까지 곁들여진 이 한 상은 상다리가 휘어질만하다고 볼 수가 있다.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그런 장들이 아니라 직접 담근 장들로 맛을 낸 반찬으로 만들어낸 맛이다.
직접 농원을 운영하면서 가져온 온 국내산 산나물을 사용해서 만들고 있는데 우리 고유의 요리법을 기본으로 자극적이지는 않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웰빙푸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초기의 창업주를 이어 지금은 4대째의 대표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한정식의 정점은 마지막에 나오는 누룽지였다. 누룽지의 고소함과 더불어 쫀득함은 그 누구의 입맛도 만족시킬 만큼 맛이 좋았다. 궁중에서는 음식을 한곳에서 만들지 않는다. 중궁전 · 대비전 · 세자빈의 전각 등 각 전각마다 주방 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 식생활 풍속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1971년 조선조의 궁중음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하였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법주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성보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속리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한 법주사 성보박물관은 2024년에 개관하였다. 건축면적 3165㎡(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상 1층에는 전시실, 다목적실, 수장고와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2층에는 상설 및 기획 전시실, 세미나실 등을 갖췄다.
법주사(法住寺)는 국내 사찰 가운데 불교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곳이기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런 문화재가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사찰 전체가 사적 제503호로 지정돼 있고, 주변 송림 등과 어우러진 경관은 명승 61호로 보호받고 있다. 사찰 안에는 16점의 국가 지정 문화유산과 충북도 지정 문화유산 22점이 산재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보은 법주사 괘불탱, 법주사 신법천문도 병풍, 법주사 동종 등 보물 3점과 법주사 선조대왕 어필병풍, 법주사 가경구년명 동종 등 도지정 문화유산 2점 등 총 66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026년에 처음 방문해 본 불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붉은말의 해라는 병오년에는 전국 52개 사찰이 2월까지 자연 탐방, 명상 캠프, 한문 강의 등 다채로운 신년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한다. 충북 보은의 법주사는 어린이 선명상과 보물찾기, 썰매 타기 등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겨울방학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법주사로 문의를 하면 된다.
불교라는 종교의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국가체계를 갖추는데 큰 역할을 했었다. 법주사의 입구에서 인상적인 법주사의 복장유물이었다. 복장 유물은 불상을 조성할 때, 불상 안에 넣는 사리나 불경 등 불교적 상징물로써 금, 은, 칠보와 같은 보화나 불상조성기와 발원문 같은 기록물도 함께 넣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서화와 예술 방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법주사 성보박물관에 가면 선조가 직접 친필로 쓴 보은 법주사 선조대왕 어필 병품이 남아 있다. 총 8폭의 병풍으로 내용은 오언절구 네 수를 썼다. 1~2폭은 작자를 알 수 없는 매화시 1수, 3~4폭은 이백의 '추포가(秋浦歌)' 17수 중 한 수, 5~6폭은 작자 미상의 오언절구, 7~8폭은 두보의 '춘 일억이백(春日憶李白)'의 일부이다.
법주사에는 특히 회화 작품이 많이 눈에 뜨인다. 불교의 세계관을 담은 조선 후기의 불화가 대부분인 법주사의 괘불탱과 대웅보전후불도, 복천암신중도, 복천암삼세불도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법주사 괘불탱은 양손으로 꽃가지를 받치고 서 있는 모습의 보살상이 6미터가 넘는 화면에 꽉 차게 그려져 있다.
불교가 이 땅에 오래도록 자리 잡게 된 것은 기존의 토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종교에 스며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불교와 토속 신앙이 합쳐진 칠성도와 독성탱 등 다양한 불화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의 의신조사가 법주사를 창건하고 진표율사가 중건한 이래 정진과 깨달음을 이어온 수많은 고승들이 법주사를 지켜왔다고 한다. 이후에도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승군도총섭이 되어 평양을 수복하고 전소된 법주사 팔상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법주사의 성보박물관을 돌아보고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조성된 공원을 돌아보았다. 하나의 사찰의 역사를 기록하는 법주사의 기록물로 속리산법주사적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1630년부터 1873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서 작성되었다고 한다.
결초보은으로 떠난 음식에서 시작된 여정은 결국 삶으로 돌아왔다. 궁중에서 이어지던 밥상은 산으로 내려왔고, 산은 사찰을 품고, 사찰은 다시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품고 있었다. 법주사 성보박물관은 법주사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라질 뻔했던 전통이 사람의 손을 거쳐 이어졌고, 그 손길은 다시 산과 절, 그리고 기록으로 남았다. 음식이 몸을 살리고, 문화가 마음을 살리며, 기록은 그것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조용히 배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