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파평윤 씨의 후손들의 생각을 기르던 논산 종학당 (宗學堂)
생각에도 아름다움이 핀다고 했던가.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는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균형 있게 잡아가면서 살아가는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지 않을까. AI시대에 앞으로의 교육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오래 전의 배움의 미학이 다시 전면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파평 윤 씨 문중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세웠던 교육 도장인 논산의 종학당을 방문했다. 조선 인조 때인 1643년 처음 세워졌으며, 화재로 인해 없어졌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파평윤 씨가 오래도록 명문가로 남겨질 수 있는 기반에는 교육이 있었다.
일반적인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문중에서 정한 교육목표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했으며, 학칙도 따로 정하여 시행했기에 독특한 교육의 과정이 존재했었다. 매년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배롱나무 꽃이 공간을 채우는 곳이기도 하다.
군자의 영향도 다섯 세대를 지나며 끝나고 소인의 영향도 다섯 세대가 지나면 끝이 난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품은 하나하나의 생각을 따라 주의가 움직이는 대로,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어내도록 뇌에다가 신호를 보내면서 살아간다.
춥지만 종학당에서 배웠던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그렇게 매섭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던 눈빛, 글을 쓰던 손, 삶을 고민하던 시간들 속에 이곳에서 배움은 출세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종학당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가 모든 답을 말해주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종학당 같은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공간 종학당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종학당은 그렇게 겨울의 시간을 차분히 보내고 있다. 2월은 설명절이 있는 달로 분주히 여러 곳으로 사람들이 오간다. 논산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될 것이다. 파평윤 씨 집안의 사람들 오 이곳을 방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절을 앞둔 논산의 풍경은 늘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하고, 오래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이 다시 모이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돌아갈 곳이 있고, 누군가는 돌아갈 곳이 없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사실을 명절이 되면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종학당을 다시 돌아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부’가 아니라 ‘삶’을 떠올릴까. 파평 윤 씨 문중의 후손들에게 종학당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까.
종학당은 적지 않은 정치인이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무게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각에 올라서 밖의 풍경을 보면서 덕담을 나누기에 좋은 곳이다.
과거의 명문가가 지켜온 것은 부나 권력이 아니라 가치관이었다. 지식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교육은 속도를 말하고 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러나 종학당이 보여주는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가깝다. 천천히 생각하는 법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은 시험 문제로 측정할 수 없는 배움이다.
올해 겨울에는 다시 종학당을 찾지 않겠지만 여기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의자처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종학당을 나서며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다. 오래된 낡은 기둥과 마루, 오래된 기와 위에 내려앉은 겨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의 생각, 선택, 망설임, 그리고 결단들이 보이지 않는 언어처럼 공간에 남아 있는 듯했다.
교육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종학당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묻는 공간이었다. 무엇을 더 많이 아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속에 AI가 답을 대신해 주는 시대일수록 사람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곳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종학당은 그 고요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속도로 시간을 건너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달리 이곳의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서가기보다, 돌아보고, 멈추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 있었던 종학당을 떠나며 마음속에 하나의 문장이 남았다. 교육은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긴 여정이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필자는 또 다른 질문을 안고 이 마루 위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