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기가 있는 회인(懷仁)

혼란스러운 조선 휘기에 손수 지어서 후학을 가르쳤던 방문호의 풍림정사

사람에게 걸어가야 할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순리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말에 늦게나마 만들어진 서당들이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결초보은의 도시 보은군에도 그런 서당이 있어서 떠나보았다. 충북 보은 회인면 눌곡리에는 풍림정사라는 서당이 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회인 IC를 지나쳐 나와야 한다. 지인이 회인이라는 지명에 대해 궁금해했다. 회인은 한자로 어질게 품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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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끝나고 나면 남아있는 볏짚을 소를 먹이기 위해 이렇게 흰색으로 포장을 내놓는다. 봄이 오기 전에 논바닥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볏짚을 뭉쳐놓았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개에 1톤이 넘는다. 논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곳에 보은 풍림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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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회인면으로 불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일제강점기에 회인군이 보은군으로 통폐합되면서 회인군이 회북과 회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이름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 `仁'자를 써야만 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예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고 `仁'자는 지명이나 이름을 지을 때 즐겨 쓰는 한자이기에 다시 옛 이름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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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소리가 들리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국도변에는 한 채의 고택과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발길을 잡는다. 풍림정사의 솟을삼문 앞에는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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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정사는 이 마을 출신의 선비 박문호(1846~1918)가 조선 후기에 손수 지은 서당이라고 한다. 풍림정사를 세웠을 때의 나이는 서른일곱으로 1872년이었다고 한다. 성리학을 연구 저술하며 후학을 강학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낸 곳이 품림정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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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정사는 높이 1.2m의 석축기단 위에 전면에는 방형(方形)의 다듬돌초석, 측면과 후면에는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운 건물이다. 풍림정사 뒤에는 단칸의 후성영당(後聖影堂)이 위치하고 있는데 주자, 이이, 송시열, 박문호, 한원진의 영정을 봉안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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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이라는 지역은 행정중심지였기에 현감의 살림집인 동헌 내아(충북도 문화재자료 71호)를 비롯해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머물던 인산객사(충북도 유형문화재 116호), 하늘에 제를 올리던 사직단(충북도 유형문화재 157호), 교육기관이던 회인향교(충북도 유형문화재 96호) 등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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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사용했을 우물의 모습도 볼 수가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회인면 중앙리 46-4번지 일원에서 '청년마을 공유주거 살아 BOEUN'도 조성을 해두었다. 단순한 주거를 넘어 청년들이 교류하며 생활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회인이라는 지역에도 청년들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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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나 서원 등의 앞에는 항상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정통 유학자답게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는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유학의 가치, 혹은 공자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떠올리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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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정사의 평면은 좌측에서부터 부엌·온돌방·대청·서재의 순으로 되어 있는데 온돌방 전면과 서재 우측면은 툇마루가 놓여 있다. 중앙에 2칸을 차지하고 있는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좌측 온돌방과 우측 서재는 모두 분합문(分閤門)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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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걸어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어떤 길이 오래 남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가 있다. 보은군의 풍림정사는 빠른 시대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회인이라는 이름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사라진 것들은 때로 늦게라도 제자리를 찾게 된다. 회인은 여전히 순리대로 살아가는 법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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