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연구(殺)忍

우연이란 없다

류진석 경사는 이른 아침에 문자가 오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경찰이라고 해도 오래간만에 쉬는 날에 출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간단한 문자내용에 의하면 해운대 송림공원이 있는 곳은 과속으로달릴만한 곳이 아닌데 불구하고 차량사고가 났고 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대낮에 말이다. 사고로 죽은 사람의 신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옆에 같이있던 학생이 그녀의 신원을 증명해주었다. 부산대학교 환경공학 조교수인 그녀는 우연히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셈이었다. 교통사고가 왜 형사과로 넘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을 나가봐야했다. 검토한 정보에 의하면 이사고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은 2명이었다.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결정적 사인은 1차 추돌 후에 반대편 차선에서과속으로 달려온 SUV차량에 깔려 갈비뼈가 심장의 안쪽을 찌른 것이 치명적인 사인이었다. 우선 사고 운전자의 진술을 받았지만 그녀와 어떤 연관관계가 없던 그도 무척이나 당황해 했던 것 같다. 사건의 이면에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류진석이 첫 번째 의구심을 가진 부분은 최영숙교수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지 않았는데 왜 갑작스럽게 차도로 나간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사고가 난 상황이 자동차의 블랙박스에 명확하게 찍혀 있어서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영상에서 보여진 그녀는 무언가에 밀려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그 공간은 사각지대에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건이 그냥 종결될 수도 있었지만 류진석은 현장에 직접 나가 주변 CCTV의 영상을 수거해서 확인해보았다. 횡단보도에서 최영숙교수 바로옆에 덩치가 좀 있어 보이는 여자가 갑작스럽게 몸을 돌리다가 최영숙 교수의 오른다리에 충격을 가했고 반동으로 최영숙교수는 차도로 넘어지듯이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 후 그녀는 당황해서 그런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 모르지만 황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마형사, 이거 CCTV영상 봤어?” 류진석 경사는 영상을 확인한 다음 옆에 있는마형사에게 말을 걸었다. 사건파일 몇 개를 정리하던 마형사는 그를 잠깐 쳐다보며 말했다.

“뭔데요?”

“어제 해운대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의 현장 CCTV.”

“아니요. 그때 차량에 있는블랙박스 영상 확인해 보니까 더 조사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교통과에서 확인차 형사과에 넘긴거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류경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책상을 살짝 치면서 일어선다.

“이 영상속의 여자를 찾아봐야겠어.무언가 찜찜해.”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요. 영상보니까 우연한 사건 같아 보이던데요. 누군가에 의해 살짝 발이 걸렸는데 갑작스럽게 앞으로 튀어나갔고 마침 과속해서 달려온 차량과 부딪쳐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류경사는 보던 영상을 일시정지하면서 모니터를 마형사쪽으로 틀었다.

“봐 생각보다 절묘해 최영숙이 가방을 앞으로 돌리면서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릴 때 다리가 걸린 것처럼 보이잖아.”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반장님이 송원파크 절도사건을 탐문 나가라고 해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경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그냥 나가라는 듯이 휘휘 저었다. 마형사가 나가고 나서 십여분을 더 생각하던 그는 영상 속의 여자 사진을 캡쳐한 후 연결된 네트워크 프린터에 출력을 걸었다.

대학교를 방문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았다. 20대의 풋풋함이나 신선함 같은 것은 잊은지 오래되었지만 대학교에 오면 살짝 기분이 묘해지는 것은 예전 기억 때문일 것이다. 대학교 정문을 지나 걸어올라가던 류경사는 환경공학 전공이 있는 제2공학관 건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최교수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성희 교수연구실을 찾아서 들어갔다. 노크를 하자 가볍지도 않으면서 낮게 깔린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쪽에는 논문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 있고 오른쪽에 창문을 두고 책상이 배치된 앞에 이성희 교수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40대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이성희 교수는 조용하면서 진중해 보이는 느낌의 사람이었다. 사건의 무게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연구실이 아닌 까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안녕하세요. 아까 명함을 못 드렸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전 해운대경찰서의 류진석이라고 합니다.” 류경사는 자신의 명함을 이성희 교수에게 넘겨주면서 인사를 했다. 명함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 류경사에게 건네주었다.

“예 안녕하세요. 그런데 최영숙 교수 사고로 찾아 오셨다구요. 제가 알기로 자동차 사고라고 알고 있는데요.”

“예 사고가 맞기는 한데요. 뭐좀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혹시 이 사진속의 여자를 아시나요?” 류경사는출력한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손으로 한 여자를 찍었다. 사진속의 인물을 10초정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그는 사진을 집어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최교수한테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원한이요?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성격도 차분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도 받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

“외람된 질문이지만 댁에서 화목한 편이었나요?”

“그런걸 왜 물어보시죠? 뭐 상관은 없는데요.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하고 가족관계도 화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희한하네요. 형사님 교통사고라고 들었는데 마치 치정관계나 원한살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직감이라고 해두죠. 20년을 이 생활을 하다가 보니 무언가 찜찜한 게 있으면 확인해야 하거든요.현장에도 가봤는데요. 현재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묘한 위화감이라고 할까 뭐 그런게 느껴져서요.”

“혹시 사진속의 여자와 관계가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 확실한건 아니고 수사내용은 밝힐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최교수는 부산대에 언제 온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4년전으로알고 있어요.” 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류경사는 앞에 있는 커피잔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커피를 주문해놓고 권하지도 못했네요. 경황이 없으실 텐데 식기 전에 드세요”

“아~ 예. 저는 태어나서 형사와 이렇게 이야기 해본 것은 처음이네요.”

“뭐 형사와 이야기해서 좋을 것이 있나요. 될 수 있으면 안보는 것이 좋은 직업 아닌가요. ㅎㅎㅎ”

관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을 검토하는 형사과장 덕분에 종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 형사과에 배당이 된 것이한 두 번이 아니었다. 덕분에 바뻐지는 것은 형사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형사들도 형사과장의 예민한 촉으로 인해 적지 않은 미제사건을 해결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최영숙이 사망하는 사고를 일으킨 두 명의 운전자는 별다른 이슈 없이 종결되면서 일단락되었다. 류형사는 이틀 정도 미뤄진 최영숙의 장례식을 찾아가 2박 3일동안 있었다. 중학교를 들어간 딸의 생일에 못가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그가 찾은 곳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장례식장이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많아서 그 누구도 류형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누구의 조문객으로 왔는지 모르지만 2박 3일동안 조심스럽게 주변을 관찰하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최과장 이번 상품도 대박 났다며?”그말을 들은 깔끔한 슈트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뭐 제 성과인가요. 상품의방향이나 컨셉을 정하고 마케팅까지 조언을 해주시는 대표님 덕분이죠. 그런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대표님은마치 상품개발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세요.”

“그러게 나도 회의에서 가끔 대표님이 말하는 상품의 컨셉을 보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거든. 그런데 실패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남다른 감각을 가졌나봐.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를 가서 어필해야 하는지 그런 감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해.”

최과장은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기면서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지금 교수로서 겸직하고 있잖아요. 그곳도 명문대인데 대단한 것 같아요.”

“갑자기 인생이 풀릴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뭐. 8년전인가? 지방대 연구교수로 근무하다가 획을 그을만한 연구를 발표하면서단숨에 학계에서 주목 받은 것도 사실이지.” 최과장은 한 숨을 쉬면서 “그러게요. 요즘 드는 생각이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가 아니라 준비된수많은 자들 중에서 한 명에게만 기회가 온다라는 생각…”

장례식장에서 대부분 교수나 교직원들이어서 그런지 서로를 교수라고 부르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띄였다. 류경사는 장례식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만 특별하게 눈에 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박3일의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가 싶더니 마지막 장지로 떠나는날 조금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최교수의 부군으로 보이는 남자와언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 검은색상복을 입은 남자는 다소 위협적인 자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이러려고 영숙이랑 결혼한거야? 너는 항상 너뿐이 몰랐어.” 상복을 입은 남자는 상대방 멱살을 잡으면서 “이렇게 된게 나때문이라는거야?” 남자는 멱살을 잡은 손을 뿌리치며 “영숙이가 행복했다고 생각해? 사고가 있기 전날 나에게 전화했었어. 남편의 외도가 의심되는데 어떻게하냐고 그래서 그날 만나기로 했는데 사고가 난거지.”

“웃기지마.” 격분된 남자는상대방에게 당장 주먹이라도 휘두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말린다. “박의사 참아. 자네가 참아야지 어떻게 해. 최교수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잖아.” 박의사라고 불리운 남자는 남자를밀어버리면서 “그 모양 그 꼴이니 지금 그 나이까지 시간강사 신세를 면하지 못하지. 왜? 영숙이가 가난하고 비전 없는 당신보다 날 선택한 것이 두고두고 남는 모양이지. 외도! 흥!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너 이새끼 말 다했어? 내가 니 고등학교 선배야. 당신?” 말을 계속하려는 그를 어떤여자가 말렸다. “선배 그만 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굴 선택한 것이 의미 있어요? 그만하고 돌아가요.” 여자의 말을 들은 남자는 박의사라는 남자를 노려보며 돌아서서 나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류경사는 일어나 그 남자를 쫓아갔다.

“잠시만요. 물어볼 것이있는데요.” 류경사는 남자를 불러 세우면서 자신의 신분증을 남자의 눈앞에 들어서 보여준다. “무슨 일이시죠? 경찰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요.” 남자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류경사를 쳐다보았다. “별건 아니고 최영숙씨 교통사고를 조사하고 있는데요. 뭐 좀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남자는눈이 조금 커지면서 “혹시 사고사인가요?”

류경사는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요. 그런건 아니고 뭐라 할까 그냥 좀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사고 같은 것은 아닐겁니다.” 잠깐이지만 얼굴에서 다소 실망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그럼 대체 왜?”

“아~ 아까 장례식장에서최영숙씨 부군하고 잠시 언쟁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러신건가요?”

“그냥 옛날 얘기에요. 데려갔으면 잘 살기나 하지 맨날 속썩이다가 비명횡사 하게 만든 셈이죠.”

“속을 썩이다니 어떻게요?”

“머 여자관계죠. 원래부터여자관계가 복잡했었거든요. 머리는 좋기는 했는데 사람이 덜 된거죠.”

“그럼 혹시 치정에 의한 계획된 뭐 그런거라고 조금이라도 의심할 부분이 있나요? 이혼을 요구했는데 해주지 않는다던지 뭐 그런거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요. 그런스타일의 남자는 아니에요. 자신의 이미지는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게까지 할 사람은 아닐겁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 성함이어떻게 되시죠.”

“제 이름이요? 김수혁이라고합니다.”

“실례지만 결혼은 하셨나요? 아까전에 잠깐 보니까 최영숙씨와 예전에 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보여서요.”

“아니요. 아직 못했습니다.” 영숙이랑 헤어진 이후에 여자를 못만났어요.”

류경사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연락을 드리게 될 일이 있을지몰라서요.” 김수혁은 별 상관 없다는 듯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류경사에게 알려주고 돌아서서 갔다. 두 세발자국 갔을까. 류경사는 그를 부르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잠시만요. 혹시 이 사진속에여자를 보신적이 있나요?” 류경사가 꺼낸 사진은 조금 흐리긴 하지만 얼굴을 구분할 수는 있었다.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요. 그 사람이 연관이 되어 있는건가요?”

“아니요. 그냥 이것 저것확인하다가 보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협조 감사드립니다.”

“예……그럼 수고하세요.” 류경사는 돌아서서 사라지는 김수혁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사람의 인격을 규정 짓기도 하고 단정 짓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수치화하기가 좋거든요. 연구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서비스를개발할 때 사용하기는 하지만 원래 페르소나[1]는특정인을 대변할 수 있는 유형화된 캐릭터를 말합니다. 보통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지금도 감독들은 자신이 생각한 배우의 모델링을 할 때 페르소나를 사용합니다. 자 화면을 보시죠.” 남자는 손에 들은 리모콘 같은 것을 가지고 스크린의 페이지를 넘겼다. 화면에는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연속해서 등장했다. 머리를 빡빡깍은 배우의 모습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16장 정도가 마치 스크린속의 오래된 필름처럼 돌아갔다.

“자 이 배우가 누군지 아는 사람.”회색의 포멀하면서 클래식한 슈트를 입고 앞에서 설명하던 남자는 정면의 강의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이동하면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떤 여학생이 말을 꺼낸다.

“제임스 맥어보이요.”

“잘 아시네요. 그런데그 배우의 얼굴이 모두 달라보이지는 않나요?”

“예 표정의 변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이 표정들은 모두 다른 인격을 표현한 것입니다. 학술적으로 인정되기도 한 해리성장애를 앓고 있는 특정인을 표현한 것인데요. 연기를 하는 배우는 한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의 페르소나는어떻게 규정되어 질 수 있을까요.” 남자의 말이 끝나자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1~2분간의 정적이 이어지자 남자는 다시 말을 꺼낸다.

“우리는 특정 캐릭터나 인물을 상상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개발하기 위해 페르소나 시나리오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CF, 마케팅에서활용을 하죠. 왜냐하면 어떻게 이용하는지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스티븐 잡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죠. 고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원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말입니다.” 남자는 앞에 있는 탁자를 소리가 날 정도로 힘을 주어 내리친다.

“산업시대에는 일반적인 시나리오에 의한 상품 개발이나 서비스 제공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도 넘었죠. 그렇다면 한 사람의 인격을 하나의 페르소나로 규정지어서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말해볼 사람.” 강의실의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시장에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뒤쪽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대답했다.

“성교수님. 빅데이터와 연결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여학생이 질문하듯이 교단의 남자에게 묻는다.

“오늘의 강의주제는 빅데이터, 딥러닝, 인공지능 같은 이슈와 조금은 다릅니다.” 성교수는 한 여학생을 가르키며 말을 이었다. “오늘의 여정을 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질문을받은 여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우유 한잔 마셨구요.버스타고 학교에 와서 오전 수업 듣고 친구들이랑 학식 먹고 3시인 지금 여기서 강의를 듣고있습니다.” 성교수는 오른손을 들어 잠시 턱을 괴었다가 내리면서 “매주 수요일이 똑같나요?”

“아마도 비슷할 걸요?”

“글쎄요. 똑같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번도 똑같은 적이 없었고 매번 경로도 바뀌고 조금씩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공간에서는큰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겠지만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에요.”


강의실에서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생각 외로 관심 있는 주제가 나와서 그런지 점점 더 몰입되는 듯한 열기로 조금씩 공기의 대류가 변하고 있었다. 공기의 흐름을 조금 늦추어지는 듯 했다. 공기가 끈적이는 느낌이지만 이 느낌을 피부로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순간 강의실이 있는 건물의 1층으로들어오는 20대 초반쯤 되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백팩을 등에 메고 들어오는 여자는 걸어가면서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지켜봤다. 마치 공간의 특성을 파악하려는 듯 오른 손을 들어서 좌우로 몇 번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여자는 들어오면서 건물안내도를 이미 보고 파악해서인지 몰라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자의 종착지는 성교수가 강의하는 강의실이었다. 강의실 뒤쪽으로 들어간 여자는 조용하게 뒷 자리에 앉았다.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공기의 흐름의 변화가 있었다.

“이제 페르소나는 아무런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론적인것으로나 영화등의 특정분야에서는 여전히 사용이 될 겁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수준의 역할 놀이에서도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죠. 자! 그럼 브레인 스토밍좀 해볼까요.” 성교수는 버튼을 눌러서 프리젠테이션의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자 특정 공간이 있다고 합시다. 주거공간이될수도 있고 상업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동, 을지로, 홍대, 이태원, 압구정, 멀리 있는 제주도를 상상해 보세요. 거기서 고정요소와 가변요소, 변수 같은것이 있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우선 고정요소를 말하자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 앉아 있던 여자가 손을 들었다. 성교수는 손을 든 여자를 바라보았다. 유달리 큰 눈에 갈색 머리,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은 아닐텐데라는 의구심이 조금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예 학생 무슨 할말이 있나요?”

“고정요소는 공간이죠. 그렇지만 공간은 가변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정되어 있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나 설치되는 시설물 혹은 AR등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죠.” 갑작스러운 여학생의 발언에 성교수는 조금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동공이 커지고 손에는 자신도 모르게 땀이 나왔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맞아요. 그리고 무작위로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패턴은 페르소나로 설명이 불가능하죠. 즉 페르소나 자체가 의미 없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교수의 말이 끝나자 여자는 이어 말했다.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입자의 패턴처럼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 패턴의 변화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면 미래에 상품이나 마케팅에 유용하게 사용이 될 수 있겠죠.” 성교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당황한 듯 했다.

“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던 가요?”

“그게 중요한가요?”

“그건 아니지만 많이 알고 있네요.”성교수는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해내려고 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성기준 교수님의 8년전박사 논문주제 였던 ‘공간패턴에 기반한 마케팅 방법론에 관한 연구’에따르면 이론의 기반에는 비정형 공간 패턴이 있었는데요. 공간에서 사람들의 패턴을 입자로 분석해 새롭게 모델링하셨었죠.”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누가 말을 하는지 보기 위해 뒤를 쳐다보는 학생들도 있고 어떤 학생들은 강의책을 뒤적거려보기도 했었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가 보군요. 예…… 제가 썼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떤 부분이 궁금한가요?”

“그 논문뿐만이 아니라 다른 논문에서 언급된 이론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적인 회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론에서 빅데이터등을 활용해 수 없이 많은 패턴을 연구하고 공간 비정형 패턴을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 인간을 입자의 집합으로 보았을 뿐 인간성에 대한 부분은 배제된 것이 아닌가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패턴분석에 사용한 툴은 무엇이었나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교수는 학생과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십여초 정도 생각하던 성교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러 연구원이 참여한 연구에서 우리는 인간성이나 심리학을 우선적으로다룬 것이 아니라 국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국가 예산을 가장 적합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 어떤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되는가를 우선시 했습니다. 그 결과 의외의 성과물이 나온 것 이구요.” 성교수는 잠시 스크린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뒤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누구인지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그 말에 대답해줄 여자는 거기 없었다.

“박 연구원, 올해 연구계획서 검토해봤어?” 모니터를 보면서 문서를 체크해보던 여자는 말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 최박사님 방금 연구계획서 피드백 내용을 메일로 보내드렸어요.”

“아 그랬어? 아직 메일을 확인 안해봤네.”

“기업 부담금 부분만 검토해보면 문제 없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잠깐 커피나 한잔 할까?”

“예 그래요.” 박 연구원과 최박사는 일어나서 휴게실쪽으로 발길을 했다. 연구소의 휴게실은 연구실에서 나와 우측으로 10여미터쯤 가면 불투명 유리로 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휴게실에는최근 도서뿐만이 아니라 연구와 관련된 도서와 최신 트렌트가 담긴 책들이 있었고 한 쪽에는 음료수와 우유 및 각종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자는 커피머신에서 내린 커피 두 잔을 들고 최박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역시 이 커피향이 가장 좋은 거 같아.”

“이 커피도 거의 떨어져서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어떻게 어머니는 요즘 괜찮으신가?” 최박사의 물음에 그녀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별로 진전은없어요. 아직도 의식은 없으시구요.”

“에고~ 박연구원이 고민이 많겠어.” 최박사는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면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언젠가는깨어나시겠죠.”

“반응이 아예 없는거야?”

“물리적인 것도 아니고 대사성 혼수[2]는아닌 심리적인 압박이라고 정확하게 원인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이세상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다는것만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야지.”


그녀는 지나 8년간의 기억을 다시 곱씹어봤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은 순간 생각하면 주마등처럼 지나갈 정도로 생생했다. 마치 8년이 8시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 같지만 그 시간은 정말 고통스럽고 천천히 지나간 것 같은 것도 시간이 가진 다른 속성이었다.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던 오빠 그 오빠는 어릴때부터 남달랐다. 보는시각 자체도 달랐을 뿐더러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너무 달랐다고 해야 하나. 아마 천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화가 없다.

“괜찮아?”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최박사가 말을 걸었다.

“아 예.” 상념에 빠져있던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도시공간의 미래 행태에 관한 연구 진행하는 곳 있잖아. 거긴 괜찮겠어?”

“그냥 진행은 되는 것 같은데요. 논문은 딱히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논문이 결과물과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괴리는 있긴 하지만 성과로만 본다면 패널티는 먹지 않을 것 같아요.”

“R&D라는 것이 뭐 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런 지표라도있으니까 성과가 있는 것 아니겠어?”

“그것이 어떤 기준에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대부분 그러니까 그런거겠죠. 잘 모르겠어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대충 흘러가지 않을까요?”

“20대의 열정이 그렇게 벌써 기성세대에 물들면 안되지. 내가 박연구원 뽑을 때 열정을 보고 뽑은 걸 후회하게 만들거야?”

“하하하 설마요. 최박사님의생각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다운 연구를 하는 곳을 지원하고 같이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어요.”

“그래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거야.”


최박사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한국의 R&D풍토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이 기초연구의 지원에 인색한 것이나 연구의 지속적인 지원이 불투명한 것도 있지만 실제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문제가 있는 부분도 없잖아 있기에 그냥 이대로 놔두는 것을 오히려 옹호하는 사람이더 많은 현실은 누구 한 사람이 바뀌어서 될 부분이 아니란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영숙이가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1년쯤 전인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와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대학교 다닐 때 CC였다가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며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했던 그녀는 한동안 연락이 끊긴채 간간히 동창들을 통해소식만 듣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그녀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오면서 자주는 않지만 간간히 만남을 해오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야기부터 최근 1년간 발생한 이상한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 바닥에 있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교수로 임용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그녀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실력은 그렇게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무언가 한 방이 필요했다. 학계를 뒤집어 놓을만한 무언가에 대한 발견이나 말 그대로 제대로된 인맥 동앗줄이 있다면 희망은 있었다. 그녀의 집안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른 나이에 교수에 임용되었고 그 뒷 배경에는 남편의 입김도 한 몫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흘러 나오기도 했다.


그 분야에서 잘나가는 의사와 일찍 임용된 교수의 조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런 그림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여성편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영숙이는 그런 부분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왠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았을 그녀가 최근 1년간은 무언가를 무척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김수혁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 다닐때도 항상 당당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했었다. 차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대학총장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보따리 장수이기에 부산에만 있을 수만 없었지만 그날은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약속장소로 갔었다.

유가족도 아닌 그가 약속장소 근처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쓰려진 장소를 표시하는 하얀 스프레이 자국뿐이었다. 그래도 한 때 사귀엇던 사람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아스팔트 위에 스프레이 자국뿐이라니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만들었다.

“아마 고통은 없었을 겁니다.” 과거를회상하며 사고 장소를 보던 김수혁의 뒤로 어디선가 한 번쯤 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수혁은 목소리가들려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예? 무슨?” 뒤에는 류경사가 서 있었다.

“신체에 가해진 충격은 상당히 심하긴 했지만 사망까지 이르는 시간은 짦았을 거에요.”

“제가 용의자인가요?”

“아니요. 저도 다시 한 번 현장을 와봤는데 우연하게 김수혁씨가 있더라구요.”

“정말로 저와 상관은 없어요.”

“압니다. 무슨 일인지는모르지만 최근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앞만 보며 달려왔던 그런사람과 야망은 조금 없지만 자신의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과거속의 연인과의 만남. 그런거 흔하잖아요.”

“기분 나쁘군요. 상관이없다고 하지만 무언가 저에 대해 까발려진 것 같은 느낌 좋지 않네요.”

“그러실 겁니다.” 류경사는손에 들고 있던 캔커피를 하나 건네주었다.

“안 마셔도 됩니다.”

“뭐 그렇다면 제가 마시죠.” 류경사는 캔커피의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김수혁씨. 강희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죠.”

“예? 강누구요?” 류경사는 말하는 김수혁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모르실거에요. 의도하지는않았지만 최영숙씨 사망사고와 지극히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입니다.”

“그럼 그 사람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건가요?”

“아니요. 전혀 그런 것도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척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절대 알고 있는 관계도 아니었고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말을 마친 류경사는 캔커피를 목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만큼 시원하게 마셨다.

“그럼 그냥 사고사였나 보네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절묘한 순간에 강희진씨가 무척 놀라면서 어딘가를 쳐다봤는데요. 그 방향의 영상이 없어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류경사의 말이 끝나자 김수혁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 보았다. 이사고가 조작된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건가.

“형사님은 그 사고가 교묘하게 조작된 사고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렇다는 겁니다. 연관이 없는 사람을 우연하게 연결시켜 사고사로 만든다는 것이 매우 아니 불가능할 겁니다. 게다가 영상속에 그여자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거든요.”


최근 결혼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연애는당사자만 좋아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결혼은 양가 집안이 맞아야 한다는 말은 그냥 주변 사람들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예단 문제부터 식장선택과 양가 부모님 인사까지 쉽게 가는 것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일어난 사고는 그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붙였다. 자신의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었다. 하필이면 그때 그게 빌딩에서 그게 떨어질 줄이야.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조금은 생각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벗어난 것도 그때문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데이런 일까지 겹치니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남자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전화와 문자를 했지만 대답할 여유도없고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차라리 미루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그냥 지금이라도 파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온갖 잡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르면서 다른 생각을할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2일전에 받은 처방 때문인지 깬지 2시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멍했다. 약의 약효가 이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다. 의사는 수면제와 수면유도제가있는데 무엇으로 처방해줄 거냐고 물었을 때 그냥 잠자는지 모르게 잠들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상당히 센 것을 처방한 모양이다. 지금도 자고 있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희진씨? 잠깐만.” 약효 때문인지 모니터에 무엇이 띄워져 있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이 팔려 있던 그녀를 누가 부른다.

갑작스런 호출에 깜짝 놀란 그녀는 “예?”

“뭘 그렇게 깜짝 놀라. 누가찾아왔어.”

“저를요?” 희진은 마치무거운 무언가가 누르는 듯한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응. 누군지는 모르겠고그냥 좀 물어보고 싶은게 있대.”

강희진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남자친구인가? 아니 남자친구라면 언니가 모르지 않을텐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회의실쪽으로 향했다. 불투명한 유리 건너편으로 남자 두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형사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의 직감은 틀리길 바랄때가 있지만 그럴 때도 비켜나가는 법이 없다. 남자친구가 거짓말을 할 때도 귀신같이 그 분위기를 직감했다. 다만 모른척 했을뿐….

“안녕하세요. 저를 찾으셨다구요.” 한 명은 선량해 보이지만 조폭 같은 덩치를 가진 남자, 다른 한 명은 다부친 체격에 눈이 매서운 남자.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해운대 경찰서의 류진석 경사입니다. 이쪽은 마호준 경장이구요.”

“예. 그런데요?” 설마 4일전 사고 때문인가?

“모르시겠지만 아니 알고 계실 것 같긴 하지만 4일전 송림공원 근처의 교차로에서 차사고가 있었거든요. 그곳에서 강희진씨가있었다는 것을 CCTV분석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류경사는수첩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예 맞아요.” 그녀는그냥 빨리 인정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부인해봤자 괜히 의심만 더 살뿐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잘못이 없지 않은가.

“맞군요. CCTV해상도가 낮아서 특정짓기가 쉽지가 않았는데요.”

“사고와 저와 관련이 있다고 찾아오신 건가요?”

“불안해 하실까봐.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련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파란불로 바뀔 때였거든요. 전적으로 운전자의 잘못이었죠.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영상속의 희진씨가 왜? 갑작스럽게 그 타이밍에 뒤를 돌아보았는가라는 겁니다. 무언가에 놀란 것처럼 보였는데 그 부분의 영상은 아쉽게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류경사의 말을 들은 그녀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원래 형사들이 이렇게 날카로웠던 건가? 그냥 사고사로 끝낼일을 가지고 조사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무언가에 놀라서갑자기 돌아보던 찰나 피해자가 파란불로 바뀐 것을 보고 갑작스럽게 앞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자신의 발에 걸려 미쳐 정지 하지 못한 차 앞으로 나갔다는것까지 파악한 듯 했다.

“예 맞아요. 갑작스런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본 것이 사실이에요. 저만 아니고 몇 명 쳐다봤을걸요.”

“맞아요. 눈치채지 못하셨겠지만당시 어딘가를 쳐다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죠?”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 뒤에 고층건물 있잖아요.”

“예 그 뒤에 베스트웨스턴 해운대 호텔이 있습니다.”

“거기에 현수막인가? 무언가를걸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한쪽이 찢어졌는지 놓쳤는지 모르지만 위에서 떨어져서 밑에 유리창 부분인가에 부딪쳐서 소리가 크게 났어요.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요즘 민감해서 그런지 깜짝 놀라서 쳐다봤거든요.”

“아하 그러셨군요. 4일전해운대호텔에서 무언가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플래카드 같은 것을 걸다가 우연하게 그것이 떨어졌고 그 소리에 놀란 희진씨의 발이 앞으로 나가던 피해자의발에 살짝 걸린 거군요.” 그 말을 끝으로 류경사는 수첩을 들고 일어섰다.

“끝난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마형사 가지. 아마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류형사의 말을 들은 마형사는무슨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예.가시죠.” 뒤돌아서며 나가던 류형사는 무언가 할 말이 남았다는 듯이 강희진을 쳐다보면서말했다.

“그리고 결혼 잘하시고 한 번 믿었으면 그냥 믿으세요.”

“예 그게 무슨?”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류형사를 쳐다보았다.

“보통 결혼 직전의 여성들이 아니면 과해 보이는 반지, 목걸이, 귀걸이까지 세트로 하는 경우가 없는데요. 게다가 희진씨 손가락의 반지위에 얹여진 보석은 거의 잔기스가 없을 만큼 깔끔하더라구요. 그리고 민감해졌다는 것은 4일전이나 지금 얼굴을 보면 드러나 보이구요. 수면제에 의존하지는 마시구요. 저혈압이라면 수면제는 악순환만 만들게됩니다. 편하게 마음 먹으세요. 이번 사고는 희진씨 잘못은없습니다.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구요.”

강희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냥 말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그런 부분까지……”

“보석은 처음 세공해서 나올 때 완벽한 것 같아서 정말 아름답게 보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생활 기스도 생기고 광채도 사라지는 것 같지만 본질적인 가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을 추구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라고 봐주길 원하는 것을 쫓아가는 것은 가짜 향기에 취하는 겁니다.”

희진은 처음 보는 남자가 해준 말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형사가 해준 말이어서 그런지 무언가 객관적인 의미 처럼 다가왔다.

마형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싶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아 그리고 아까 그분한테 형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인이라고만 했으니까요. 희진씨도 그렇게 말하시면 될 것 같아요. 형사가 찾아왔다고 해서 좋게 볼 사람이 없잖아요.”

“마형사 대충하고 가자.” 류형사는 마호준의 팔을 잡아 끌듯이 살짝 당겼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형사는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사들이 가고 나서 강희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우연하게 사고가 일어났고 자신은 크고 작건 간에 관련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우연한 사고와 직장으로 찾아온 형사…… 무언가 연쇄효과처럼 자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형사가 찾아와서 오히려 속시원해진 것은 왜일까.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1] 심리학자이며 의사였던 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를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 물리적 원인에 의한 혼수가 아닌 당뇨병이나 알코올 중독에 의한 혼수로 뇌의 삼투압 평형을 파괴하고 뇌세포에 손상을입히게 된다.


부크크 http://www.bookk.co.kr/book/view/23837

사형수

최홍대가 첫 장편 소설로 발표한 '사형수'는 사회적 이슈와 언론, 사람과 사람사이의 미묘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되고 서술되었다. 과거로 부터 도망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결국 그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던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의 이야기가 섵불리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사형이 집행된 이 후, 사회에서 밀려 나가지 않기 위해 살아야 했다. 군중 속에 고독하지만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나서는.......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스토리는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나왔던 플롯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키고 이를 추리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현은 사형제도가 아직 존속되고 있는 한국에서 살고 있고 경찰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기획수사에 투입되어 억울하게 그 생을 마감한다. 그 트라우마를 견뎌내는 듯했지만 여전히 꿈속에서는 현재 진행행이다. 아들이 발견하는 것을 원했는지 모르지만 숨겨 있었던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 한 소시민의 의지가 그려진다. 또한 ‘현’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상실감과 정면 돌파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트렌디한 이슈를 끌어들여 유기적이고 심층적으로 그려졌다.

http://www.bookk.co.kr/book/view/23837

 

Yes24 http://www.yes24.com/24/goods/45879998?scode=029

교보문고 http://pod.kyobobook.co.kr/newPODBookList/newPODBookDetailView.ink?barcode=1400000290057&orderClick=KBC

11번가 http://books.11st.co.kr/product/SellerProductDetail.tmall?method=getSellerProductDetail&prdNo=1838776684&trTypeCd=21&trCtgrNo=585021&lCtgrNo=2967&mCtgrNo=83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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