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복지겸

당진면천에 자리한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장군의 묘와 유적지

요즘에 케이블 TV등에서 태조왕건이 다시 방영되고 있는데 1년 동안 계속 방영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 채널이 많지 않을 때에는 KBS등에서 만든 드라마의 시청률은 상당히 높았었다. 지금은 OTT가 등장하면서 선택권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정통역사를 그린 드라마는 롱테일의 법칙처럼 꾸준하게 소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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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복지겸이라는 사람이다. 면천(沔川) 복 씨(卜氏)의 시조이면서 면천두견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태봉(泰封)의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서 궁예(弓裔)가 민심을 잃자, 918년(태조 1)에 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홍유(洪儒)와 함께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를 개창하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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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설화에는 복지겸이 노후에 고향 면천으로 돌아와 병으로 눕게 되자, 아버지의 병을 고쳐 달라고 빌던 어린 딸 영랑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은행나무 두 그루를 구해 뜰에 심고, 앞산 진달래 꽃잎을 따 술을 담가 100일 동안 익혀서 드리라"라고 한 말을 듣고 따랐더니 나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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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사라지고 후백제와 후고구려, 신라가 공존했던 시기는 약 100여 년이다. 그 시감동안 여러 인물들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복지겸의 가문에 대해서는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에 지역 호족가문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진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기에 당진시 면천을 중심으로 해상 호족 세력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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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복지겸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복지겸은 왕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궁예의 왕국 태봉에 합류하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는 전장을 다니면서 무공을 세우기보다는 왕건의 옆에서 책사나 다양한 일을 맡으면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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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는 여러 인물이 있지만 복지겸은 지역에서도 잘 알려진 사람으로 다양한 역사문화 행사의 주인공이 된다. 복지겸 장군의 묘는 한적한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무덤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묘역으로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과 안내문이 설치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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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겸 장군의 묘 바로 인근에는 무공사가 자리하고 있다. 장군의 충의와 공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이곳은 상시 개방이 되어 있다. 조용하게 면천을 산책하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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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품은 지역으로, 과거 당진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백제 시대에는 '혜군(兮郡)', 통일 신라 경덕왕 때는 '혜성군(兮城郡)'으로 불렸다고 한다. 중국의 시경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한 구절에서 "넘쳐흐르는 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네(면피류수沔彼流誰, 조종우해朝宗于海)"에서 면천이라는 이름이 면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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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오갔다. 면천은 해산물과 소금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지금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태조 왕건이 다시 방영되고 있는 지금,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혼란의 시대, 선택의 갈림길, 그리고 한 인물이 어떤 판단을 통해 시대를 건너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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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은 크지 않은 지역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품기에는 충분히 깊은 지역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지가 아니라,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다.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이곳을 찾는다면, 화면에서 보던 인물들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이름이, 장소를 통해 비로소 현실의 무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면천은 과거를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생각하러 가는 장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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