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보다 오래된 대전

역사공동체 대전을 만나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과 유성온천 이야기

산업화시대와 정보화시대의 교육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과 사회에 적합한 기본적인 소양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일정한 시간을 학교에서 배우고 학생들 개개인의 재능보다는 성장하는 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이런 교육방식은 근대와 현대사 100년 동안 유효한 교육방식과 맞닿아 있었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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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서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대전의 100년을 알고 싶다면 옛 충남도청 건물에 자리 잡은 대전근현대전시관을 방문해 본 된다. 이 건물은 1930년대 초에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도 원형이 잘 보존된 보기 드문 근대문화유산으로, 건축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함께 지닌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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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는 건축물 자체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대전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상설전시와 대전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과 역사, 건축, 도시계획과 문화등을 만나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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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근현대사전시관의 안쪽에는 기획전시로 유성온천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어서 방문해 보았다. 지금은 유성구에서 조성한 온천특구를 제외하고 오래된 호텔등이 사라지면서 온천은 과거의 유물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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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과 태종이 전라도 임실에서 열린 강무임어(講武臨御)를 위해 행차하던 중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성온천은 대표적인 대전의 관광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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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전에서 학창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유성온천은 어떤 의미일까. 유성온천의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지금 대덕구인 대덕군이 대전시로 정식 편입함으로써 도로정비를 하면서부터였다. 1992년 현재 도건설종합계획과 대전도시계획에 따라 유성온천 대단위 위락단지의 조성을 하게 되었다. 그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충청남도의 종합계획하에서 대전의 도시계획이 추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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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있었던 유성온천의 환경을 이곳에 재현을 해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숙박하거나 쉬는 공간의 모습도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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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PC나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을 지나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하는 시대다. AI조차 이제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시대에 아날로그가 가진 의미에 대해 접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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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건국된 역사보다 도시가 만들어진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대전은 단순히 행정공동체를 넘어선 역사공동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한국전쟁, 민주화, IMF경제위기, 2008년 경제위기, 코로나19까지 지나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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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근현대사의 시간변화에 따라 학군도 바뀌고 도시의 모습도 달라져왔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조선시대에는 회덕현, 진잠현으로 공주목의 일부로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대전이 1895년경 회덕군 아래 대전이라는 말단 행정구역으로 정식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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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전의 중심은 중동, 정동, 원동 일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20세기 초 경부선 철도부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 이주자들에 의해 대전은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대전은 철도를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의 전형을 보여주게 된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자리 잡으면서, 대전은 행정과 물류, 산업이 함께 모이는 공간으로 빠르게 변화해 간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도시 구조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임시수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대전의 위상은 더욱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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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교육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표준화된 교육은 한동안 유효했지만, AI와 자동화가 일상이 된 지금은 각자의 선택과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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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 대전은 교육과 연구의 도시로 방향을 잡게 된다. 국책연구기관과 대학들이 자리 잡으면서, 이 도시는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닌 ‘머무는 도시’로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기에는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의 기능이 강조되었고, 정보화 시기에는 기술과 지식이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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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걷다 보면, 도시의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축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유성온천의 전성기, 철도와 함께 성장한 원도심, 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생활권까지, 각각의 시기는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겹겹이 쌓이며 지금의 대전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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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행정도시에서 연구도시로, 다시 생활과 문화가 결합된 도시로 변화해 온 과정은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도시는 사람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고, 교육은 그 선택의 방향을 결정짓는 기반이 된다. 대전의 지난 100년은 변화에 적응해 온 시간의 기록이었고, 앞으로의 100년은 다양성과 개별성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품고 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나서며 마주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아지게 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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