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이어지는 남창지역의 변화의 중심이 되는 남창역
도시가 발전하게 되는 데 있어서 교통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기찻길, 고속도로등은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큰 혈관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연결거점을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KTX는 현재 항공기를 제외하고 지역과 지역을 가장 빨리 이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게다가 접근성은 공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울주군 온양읍에는 남창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남창에는 남창역이 있는데 5일마다 큰 규모의 시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남창의 이름을 따라 흐르는 물이 남창천이고, 남창천은 다시 회야강과 합류하게 된다. 회야강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물길이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이 태어난 박이 밤에 이 강으로 떠내려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곰내, 곰수로 불리다가 웅촌에서는 남천, 온산에서는 회야강, 서생에서는 일승강으로 불렸던 이름 많은 강이기도 하다. 물길 하나에 시대와 지역의 기억이 겹쳐 흐르고 있는 곳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지금의 남창역은 새롭게 지어진 역사다. 하지만 그 옆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남창역 역사가 남아 있어서 근대역사 양식을 살펴볼 수가 있다. 소규모 목조 역사로, 당시 지방 역사의 건축 형식과 공간 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왼쪽 역무실에는 급한 박공이, 오른쪽 맞이방에는 완만한 경사 지붕이 얹혀 있고, 철로 쪽에는 돌출된 역무실 위로 두 개의 박공이 배치되어 있다. 바닷가 마을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실용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모습이다. 새 역사와 옛 역사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은, 이 지역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야강을 거슬러 올라가 남창천을 따라가다 보면 남창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과 철도가 만나는 이 지점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 이야기가 오가던 자리였다. 8월이 되면 남창천 공영주차장 일원에서는 ‘남창천 물빛 축제’가 열려, 연등과 물빛, 체험과 장터가 어우러진 풍경이 만들어진다. 살고 있지 않아도 자주 찾다 보면, 이 지역이 가진 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남창역은 규모로 보면 결코 작은 역이 아니다. 다른 광역단위 대도시의 거점역에 준하는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KTX-이음은 정차하지 않다가 작년 12월부터 KTX-이음이 정차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울주군은 최근 남창역을 KTX-이음 정차역으로 유치하기 위한 홍보와 범군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지역의 속도를 바꾸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남창역 정차는 상행 1회, 하행 1회로 정차 시간은 상행 오전 10시 35분, 하행 오후 7시 57분으로 결정됐다. 울주군은 이번 결정으로 온산국가산단 기업의 수도권 접근성이 개선되고, 남창역 인근에 있는 옹기마을과 간절곶 등 관광지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통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2021년 12월, 부산 부전역과 울산 태화강을 잇는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부터였다. 장날이면 부산과 울산에서 전철을 타고 온 사람들이 남창역에 내려 시장으로 향한다. 철도가 연결되자, 시장의 온도도 함께 올라가고 물길과 철길, 장터가 다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남창이라는 지명은 ‘남쪽에 자리한 창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 숙종 5년인 1679년, 공수현이 설치되며 백성들로부터 거둔 곡식을 임시로 저장하던 창고가 이곳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령 김 씨 공수파가 집단으로 거주하며 창고 관리와 관련된 일을 맡았고, 이곳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는 거점이 되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온양읍은 삼한시대 진한에 속했던 우시산국의 땅이었고, 대운산 산성 일대가 그 도읍지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외고산 옹기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가면 가지산 사계와 신불산 억새평원, 간절곶 일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명문 같은 울주의 대표적인 자연·문화유산들이 이어진다. 남창은 이 모든 장소로 이어지는 하나의 관문이기도 하다
지금 남창역은 오래된 기억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얹고 있는 중이다. 강과 시장, 철도와 축제가 겹쳐진 이곳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KTX가 정차하게 된다면, 남창은 단순히 지나치는 역이 아니라 머무는 장소로 다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늘 갑작스럽게 오지 않는다. 이미 쌓여 있던 시간 위에, 하나의 선택이 더해질 때 비로소 방향이 바뀔 수가 있다.
남창역과 남창천, 그리고 회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물길처럼, 이 지역의 변화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기대되는 변화는 개발이 아니라 연결이다. 과거와 현재, 지역과 외부, 머무름과 이동이 다시 이어질 때, 남창이라는 이름은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변화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