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존중하지 않은 사람들은 돈은 다가오지 않는다.
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돈과 화폐를 같은 것이라고 보는데 전혀 다르다. 돈은 본질적인 가치를 말하며 화폐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금속 혹은 종이로 매겨지는 가격을 표시하는 그 무엇이다. 화폐는 그 시대의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 의해 발행되고 표준화된다. 화폐는 근본적으로 빛에서 출발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엔트로피가 발생한 대로 그대로 확산이 되는 것처럼 발행된 화폐는 끊임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정된 자원의 금과 은과 같은 금속은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 왔다.
달러의 어원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 지방의 도시 야히모프(Jáchymov) 지역의 은광과, 이 은광에서 채굴한 은으로 만들어진 은화에 관한 설(說)이 유력하다. 1520년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은으로 은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요아힘스탈러 그로셴(Joachimsthaler Groschen)', '탈러 그로셴(Thaler Groschen)',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 '슐리켄탈러(Schlickenthaler)' 또는 간단히 '탈러(Thaler)'라고 불렀던 것이 오늘날의 달러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사기사례를 보면서 그들에게 동정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부업사기나 최근에 쿠팡의 딸깍딸깍 사업에 돈을 쓴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기에 빠졌다는 것이고 여기에 약간의 책임감이 이상하게 뒤섞인 결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쉽게 생각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관점자체가 너무 얕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선한 마음은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생명의 위협등에서는 일어날 수 있지만 돈을 대할 때는 사람의 선함이라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조희팔 같은 사기꾼의 말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무지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은 절대로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신이 현재 버는 돈과 향후에 벌 수 있는 돈을 계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왜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200 남짓의 월급을 받는 청년이 전세대출 1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전세가 기를 받는 현실이다 공무원 월급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3~4억을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과연 정상적일까. 그들의 선택은 향후 인구구조 따위는 집어던져버리고 그냥 부동산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어차피 돈을 갚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지금의 금리가 어떻게 바뀔지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자신의 수입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고 미래에 들어올 수입도 예측도 하지 못했다.
1억이라는 돈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으기에 너무나 힘든 것은 우선 지금 벌고 있는 돈의 한계도 있지만 여기에 물가상승률은 이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을 더 사용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와 비교문화는 돈을 모으기는커녕 더 소비하도록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 돈의 무게는 더 가볍게 보일 수밖에 없다. 돈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에 대해서 여유로워질 수가 있을까. 돈을 둘러싼 혼란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책임의 착각이다. 사기꾼은 돈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왜곡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작은 돈으로 곧 큰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노력과 축적 없이 결과를 앞당길 수 있다는 말은 모두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끌어다 쓰겠다는 유혹이다. 문제는 그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기는 반드시 붕괴로 끝난다. 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사라진다.
부채 역시 마찬가지다. 부채는 단순히 돈을 빌리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의 노동과 선택권을 담보로 현재를 소비하는 구조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대출과 과도한 레버리지는, 개인이 자신의 미래 소득을 과대평가한 결과이기도 하다. 인구는 줄어들고,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하며, 사회 전체의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는데도 개인만 예외일 것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대출을 받으면서도, 나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집단적 착각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자산 거품이다.
인구구조는 돈의 흐름을 결정하는 가장 냉정한 변수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줄어들면 소비도 줄어들고, 노동도 줄어들며, 세금으로 유지되던 시스템은 흔들린다. 연금과 복지, 의료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하지만 이를 떠받칠 사람은 줄어든다. 이 구조에서 화폐는 더 많이 찍힐 수밖에 없고, 화폐 가치의 희석은 가속된다. 이때 사람들은 실물 자산이나 고정된 가치를 찾지만,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선택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이고, 쉽게 빌린 돈은 쉽게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조급함은 판단력을 흐리고,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은 사기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된다. 사기꾼은 인간의 탐욕보다 인간의 불안을 더 잘 안다. 뒤처질까 봐, 기회를 놓칠까 봐, 나만 가난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기를 완성시킨다.
결국 돈의 본질은 신뢰와 시간이다. 내가 지금 벌고 있는 돈이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화폐의 숫자가 아니라, 그 화폐가 교환될 수 있는 사회가 유지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만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돈을 이야기하는 것은, 숫자만 보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속는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돈으로 현실을 건너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은 결코 현실을 건너뛰게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더 빨리, 더 크게 드러낼 뿐이다. 화폐는 바뀌고, 제도는 흔들리며, 인구는 줄어든다.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빠른 수익이 아니라, 느리지만 지속 가능한 판단이다. 돈을 쉽게 벌고 싶어 하는 사회는 반드시 더 큰 비용을 치른다. 그리고 그 비용은 늘 가장 늦게 깨달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태도의 재설계다. 화폐가 아닌 가치, 속도가 아닌 구조, 기대가 아닌 계산. 이 기본을 다시 붙잡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왜 사람들은 속는가가 아니라, 왜 아직도 돈을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