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돈, 사기가 시작된다.

노력보다 쉬움을 강조하는 순간, 이미 설계된 함정은 준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왜 쉬운 돈을 원할까.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고, 노트북에 몇 줄 입력하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노동의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현실적으로 따진다면 한 건에 100원 정도가 적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건에 만 원’, ‘하루 몇 시간으로 월 수백만 원’이라는 말에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렇게 돈을 줄 만큼 세상이 어리석지는 않다. 누군가 쉽게 번다는 돈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잃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도 없고 마땅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쉽게 돈을 번다는 것은 것은 생각만 해도 매우 이상하지 않을까. 지금의 부업 광고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없어도 된다’, ‘경험이 없어도 된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들은 모두 같은 의미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시간과 숙련, 그리고 책임이 따른다. 그 과정이 생략된 채 돈만 남아 있는 일은 존재하기 어렵다. 만약 그런 구조가 있다면 그것은 생산이 아니라 이동일뿐이다. 누군가에게서 다른 누군가로 돈이 옮겨가는 구조, 그것이 대부분의 부업사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상품을 팔지 않는다.


정보를 파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여자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일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소개받기 위한 비용’을 요구하고, 수익 구조를 설명하기보다 성공 사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캡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구체적인 노동은 흐릿하고, 결과만 선명하다. 이는 일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대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속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기는 거짓말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현실보다 약간 쉬워 보이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수준에서 문을 연다. 큰 욕심이 아니라 작은 희망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특별히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고 싶었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구조를 더 빠르게 확산시켰다. 과거에는 사람을 직접 만나야 했다면, 이제는 메시지 몇 개와 화면 속 후기만으로도 신뢰가 만들어진다. 실제 경험이 아니라 연출된 경험이 소비되고, 검증보다 속도가 앞선다. 플랫폼은 연결을 돕지만, 동시에 책임의 경계도 흐리게 만든다. 결국 부업사기의 핵심은 돈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신뢰를 소모시키는 방식이다. 노력해서 얻는 성취가 아니라, 지름길이 있다는 믿음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면서 노동의 의미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환상은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일하지 않고도 벌 수 있다’는 허상을 공유하게 만든다. 돈은 언제나 이유를 따라 움직인다.

가치가 만들어진 곳으로 흐르지, 설명만 있는 곳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쉽게 번 돈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뒤편에는 언제나 그 대가를 치른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실패담 위에서 유지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 아니라, 일의 과정을 지워버리는 이야기들이다.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서 돈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기회가 아니라 질문해야 할 신호에 가깝다. 쉬운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작 준비해야 될 시간의 힘은 뒤로한 채 조금만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면 충분히 속고 자신의 돈을 탕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사기는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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