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혁신도시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

필자는 평소에 일 때문에 지방도시로 가는 일이 많았는데 혁신도시에서 1박을 자주 했기 때문에 그 도시의 구조와 문제를 알고 있다. 강원도의 원주, 제천과 음성, 김제와 구미, 나주, 진주 등을 가보면 기묘한 도시를 보게 된다. 주말에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과도한 쏠림으로 인해 엄청난 문제를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혁신도시다.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국토균형발전을 꾀한 것이다. 2013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벌써 10년을 훌쩍 넘어섰다. 혁신도시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한시적으로 통근버스와 신규아파트의 입주권을 먼저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필자는 이 시스템이 정말 문제가 많다고 몇 번 지적했다. 한시적이라는 통근버스는 올해 들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로 가는 전세버스를 대주면 공공기관 이전 효과가 없다”라고 지적한 뒤 국토교통부는 당장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수도권 전세 통근버스를 정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왜 다른 대통령이나 정치인 혹은 고위공직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던가. 때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그들이 자신의 집값을 유지하고 자식들을 인 서울 하기 위한 통근버스를 지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조는 청와대 앞에서 갑작스러운 조치라고 발표하기도 했었다. 조직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한시적이라는 것은 10년 이상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3년 정도면 충분했다. 그들은 혁신도시 정주 여건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가족을 데려오고 그곳에 정주해야 병원이 들어오고 학교가 들어서고 문화시설이 자리 잡게 된다. 어떤 혁신도시는 그들의 출퇴근을 위해 KTX를 늘리기도 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국민의 세금으로 서울 집값을 지탱해 주는 꼴이 아닌가. 지방에서 살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다.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서울중심의 개발정책으로 성장했으니 그 과실을 이제 전국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른 국민들은 바보라서 지방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 그리고 균형발전으로 부동산 정상화, 청년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정작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통근버스와 KTX 등을 이용해 서울로 다시 들어가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도시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일부 도시공학 교수들이 나와서 하는 뻔한 이야기는 이제 듣기도 귀찮다. 혁신도시 정주 여건이 미비한 상태에서 일단 공공기관 이전을 밀어붙였고, 현재도 여전히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 살 매력이 없다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다. 맹자는 무슨 일이든 잘못된 일을 알았다면 미루지 않고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이다.


“허물을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또 다른 허물이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한국사람들은 참 유예기간을 좋아한다. 이번에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팔기 위해 충분히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유예가 연장될 것이라는 생각에 버텼던 것이 아닌가. 이미 4년 전부터 준비했으면 그런 볼멘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여기서 핵심은 “언젠가 고치겠다”가 아니라 지금 바로 고치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 사욕이 개입되고 마음이 흐려지며 미루면서 결국 고쳐지지 않게 된다. 혁신도시가 안착하려면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행하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불편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살아간다.


정치인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100보를 달아나서 멈추고 다른 사람은 50보만 달아나서 멈추었을 때 50보 도망친 사람이 100보 도망친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사람이다. 지금 KTX매진 사례도 혁신도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오가기 때문에 KTX의 일부 공간을 꾸준 하계 예약해서 사용한다.


아파트 우선 분양권과 이주 정착 지원금, 자녀 학자금 등이 세금과 공적 재원에서 나갔는데도 수도권에 산다면 그것이 서울과 수도권 집값을 받치는데 모든 국민의 돈이 들어가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바꾸어야 하고 유예기간이나 한시적이라는 표현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결국 혁신도시의 성패는 건물을 얼마나 지었는가가 아니라, 그곳에 실제 삶이 자리 잡았는가에 달려 있다. 도시라는 것은 도로와 아파트, 공공청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머물고, 소비하고, 아이를 키우고, 병원을 찾고, 문화와 관계가 쌓여야 비로소 도시가 된다. 지금까지의 혁신도시는 ‘이전’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착’에는 실패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미루는 방식 속에서 스스로 동력을 서서히 잃었기 때문이다.


정주 여건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야 상권이 생기고, 수요가 생겨야 교육과 의료가 들어온다. 사람이 오지 않는데 시설부터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정책이다. 애초에 혁신도시는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국토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사회적 합의 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취지에 맞게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전한 기관은 그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을 전제로 운영되어야 하며, 예외적 편의를 상시화 하는 순간 정책의 명분은 사라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적인 지원책이 아니라 기준의 명확화다. 통근을 전제로 한 지원이 아니라, 실제 거주를 전제로 한 정책이어야 한다. 일정 기간 이후에는 생활 기반 이전을 원칙으로 하고, 지역 사회와 연계된 교육·의료·문화 인프라 확충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도시가 단순한 ‘직장 위치’가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잘못을 알았다면 고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유예를 반복하면, 결국 제도는 신뢰를 잃고 방향도 흐려진다. 변화는 불편을 동반하지만, 그 불편을 통과해야만 새로운 발전의 기회도 만들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논의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답을 실행하는 일이다.


국토균형발전은 구호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서울 중심의 성장으로 얻은 이익을 이제는 공간적으로 나누어야 할 시점이라면, 그 과정 역시 분명한 원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도시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미루지 않고 바로 적용하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도 비용이 적게 드는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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