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성이 소멸된 사회

남녀 간의 신뢰가 아닌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가정의 붕괴

지금 시대는 남자가 장인어른의 집으로 가는 장가도 아니고 여자가 시댁으로 가는 시집도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제도에 얽매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구하려고 하고 있다. 여자가 시집간다는 의미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관계(친정을 포함한)를 포기하고 그 집안의 아이를 낳고 가사노동에 종사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그걸로 인한 대가를 결혼식등을 통해 한 번에 받는 형태였다. 화려한 웨딩과 안정적인 주거공간등은 이로 인한 것이었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여자는 그걸로 인해 보상받는다고 믿었다.


사회는 변해서 여자는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여전히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가져가며 시댁에 갇혀 살지도 않고 자유도가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출산으로 인한 직장경력의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남자 역시 과거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대신에 가부장적인 태도를 유지하던가 가사노동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전과 같은 삶을 누려서도 안 되는 결혼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랑 같은 감정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일환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면서 농경사회의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산 상속 구조를 유지하고 자녀 양육의 책임을 져야 했다. 여기에 특정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했었다. 국가 복지시스템이 미약하던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돌봐주는 그런 상황이 필요했었다. 즉 인생의 순환기에서 생존을 위한 계약 구조와 비슷했다. 이제 경제적 생존은 개인에게 치우치고 있으며 노후는 개인의 연금이나 자산, 국가 복지, 자녀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진다. 물론 사교육등에 돈을 대는 역할은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도 사라져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의 이혼율이 높은 것은 서로 간의 신뢰를 확인하지 않고 우선 결혼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은 쉽지가 않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며 살아온 방식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는 신뢰를 붕괴시키게 된다. 게다가 한국의 결혼제도는 이혼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이조차도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에 의해서 마치 기계적으로 재산을 나누는 형태다. 이런 시스템을 신뢰하고 결혼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결혼의 소멸이라기보다 결혼이 만들어졌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 집값과 양육비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책임 역시 증가했다. 반면 결혼이 제공하던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필수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결혼은 더 이상 기본값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정해진 제도가 삶을 대신 설계해 주던 시대에서,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시간과 관계, 경제적 기반을 직접 구성해야 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더 이상 타인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결혼이라는 이름이 유지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동반 관계가 등장할 수도 있다. 법적 제도는 뒤늦게 따라오겠지만, 실제 삶의 방식은 이미 훨씬 앞서 변화하고 있다. 함께 살지 않아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경제를 공유하지 않아도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혈연 중심에서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반드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혼자서도 완결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위에 필요할 때 연결되고, 원할 때 협력하는 유연한 관계를 설계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결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더 이상 삶의 출발 조건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인생을 시작하지 않는다. 각자의 삶을 먼저 살아가다가, 필요하다면 그 위에 관계를 더할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맹자와 혁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