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속의 불상

올해 겨울 지리산으로 여행에서 만난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함양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람과 시간이 오래 머물러 온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산악군을 이루는 산이지만, 함양 쪽에서 들어서는 지리산은 특히 조용하고 깊다. 화려한 관광지의 느낌보다는 숲과 계곡, 그리고 수행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산의 성격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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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을 따라 함양으로 들어가다 보면 사람의 손길보다 먼저 시간이 다녀간 듯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 산길 어딘가에, 바위와 한 몸이 된 부처가 서 있다. 절을 세운 것도 아니고, 거대한 전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산과 바위 자체를 법당으로 삼았던 옛사람들의 신앙이 그대로 새겨져 있을 뿐이다.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그렇게 지리 속에서 발견되는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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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함양이 자리한 곳의 지리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머물며 자신을 돌아보는 산으로 여겨져 왔다. 신라와 고려 시기에는 이 일대에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자리했고, 세속을 벗어나 수행하던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왔다. 함양의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같은 유적도 바로 그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 자체가 하나의 도량(道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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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능선이 한눈에 드러나는 장대한 풍경이라기보다, 골짜기와 숲이 이어지며 산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곳의 지리산은 ‘보는 산’이라기보다 ‘들어가는 산’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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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지리산은 황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잘 보여서 오히려 기분이 명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리산의 봄에는 연둣빛 숲이 천천히 깨어나고, 여름에는 깊은 계곡이 더위를 식혀 주며, 가을에는 단풍이 산 전체를 물들이고, 겨울에는 고요한 설경 속에서 산의 본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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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거대한 화강암 바위를 전체 높이 6.4m, 불상 높이 5.8m로 새겨긴 마애불로서 광배와 대좌까지 갖추고 있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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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磨崖佛)은 돌을 따로 다듬어 세운 것이 아니라, 산이나 절벽의 바위 자체를 깎아 불상을 조성한 형태를 말한다. 즉 자연과 인공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신앙 공간을 이루는 방식이다.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며, 인위적인 장엄함보다는 수행과 기도의 장소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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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지리산 일대가 불교 수행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깊은 산세와 넓은 품을 가진 산으로 인식되어 많은 승려와 수행자들이 찾아들던 곳이었다. 사찰 중심의 신앙 활동뿐 아니라, 산속 암벽이나 자연 공간에 불상을 조성해 수행처로 삼는 전통도 함께 이어졌다.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바로 그러한 산중 신앙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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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규모가 크거나 관광지로 잘 알려진 유적은 아니지만, 지리산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오랜 신앙과 수행의 무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이다. 화려한 사찰 건축이 인간의 신앙을 드러낸 결과라면, 이 마애불은 자연 속에서 조용히 이어져 온 믿음의 방식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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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애불이 자리한 위치는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맞닿아 있어, 산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이정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험한 산길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거나, 수행의 시작과 끝을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자연 암벽 위에 새겨진 불상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미 ‘산 전체가 하나의 도량’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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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깊은 숲과 바위,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불상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떤 장엄한 종소리나 의식이 없어도, 산과 불상이 함께 만들어내는 고요함 속에서 오래된 신앙의 결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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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지리산은 조용하기만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하루였다. 왜 지리산을 방문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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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함양에서 만나는 지리산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오르는 산이라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산에 가깝다. 화려한 문화재나 거대한 사찰과 달리, 이곳에는 설명을 덧붙일 만한 장치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더 오래 머물게 된다.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의 움직임, 그리고 바위 위에 새겨진 불상의 형상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어떤 해설보다도 분명하게 이곳의 시간을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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