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기억하는 공간

밤이 많아서 밤나무동, 율현이라고 불렀던 곳의 자리한 청송사지

울산이라는 도시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경상도의 최대공업도시였던 울산은 이제 여행 가기 좋은 곳으로 다양한 공간이 발굴이 되고 있다. 울주군은 청동기 시대 집단 마을터였던 사적 제332호 검단리 유적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널려 있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었다는 청송사지 3층석탑으로 가는 비좁은 길목 곳곳에는 밤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이곳에는 큰 규모의 사찰이 있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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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에 자리한 청송사자는 오늘날에는 석탑과 기단부, 주춧돌 등의 유구만이 남아 있으나, 이러한 흔적을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와 기능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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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은 상하기단의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각 면에도 하나의 지탱 기둥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마감돌 위에는 다른 돌로 2단의 모난 괴임돌을 끼워서 각각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고,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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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는 산을 두는 배산(背山) 구조에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인 공간 확보가 되어 있다. 수행 환경을 위한 고요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이곳이 단순 암자가 아니라 일정한 격식을 갖춘 중형 사찰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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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가면 청수사라는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청송사지는 완전히 복원된 유적이 아니지만 바로 그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추고 있다. 복원된 공간이 과거를 재현한다면 청송사지는 시간이 지나간 흔적 자체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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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지로 가보면 다른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넓은 터에 삼층석탑만이 이곳에 사찰이 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청송사지가 위치한 곳은 산자락에 기대어 형성된 완만한 지형으로 이러한 입지는 전통 사찰 입지 조건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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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빠르게 변하지만, 장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건물은 무너져도 터는 남고, 사람은 떠나도 시간은 머문다. 청송사지가 보여주는 것은 완전한 복원이 아니라 ‘기억의 잔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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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자리한 청송사는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청송사지와 연결해서 방문해 보기에 무난한 곳이다. 통일신라의 불교문화가 지역에 뿌리내렸던 흔적, 조선시대 억불 정책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간 사찰의 운명, 그리고 오늘날 문화재로 남은 터의 의미까지 하나의 공간 안에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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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지만, 오래된 터는 그 아래에서 조용히 시간을 증언한다. 울산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더라도, 이사찰 터는 이 도시가 오랜 시간 위에 세워졌음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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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는 청송사지 부도도 남겨져 있다. 부도가 있는 위치가 보통 사찰입구에 잇는 것으로 보아 청송사의 규모를 추측해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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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청송사지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라진 사찰의 자리를 통해 지역 불교사와 사회 변화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역사 공간이다. 남아 있는 것은 몇 점의 돌과 터뿐이지만 그 위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시간이 있다. 지역 공동체의 삶과 신앙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청송사지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기보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갔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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