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가 좋아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방문했다는 영동 5경 함벽정
개나리가 언제 피어나는지 벚꽃이 언제 피게 되는지에 대한 뉴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기다리는 꽃에는 공통점이라면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색감이 들어 있다. 그런 꽃들이 피어나기에 앞서서 영동군에 자리한 정자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머무는 자리이면서 누구나 찾아가고 싶었던 그런 공간에 자리한 정자이게 지금도 영동 5경으로 지정된 곳이다.
영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영동 5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함벽정이다.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정자 하나가 만들어내는 풍경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함벽정은 위치부터 남다르다. 강과 산이 어우러지는 지형 위에 자리해 있어, 그 자체로 자연을 조망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다. 옛사람들이 정자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자리’였다. 풍경을 가장 잘 품고, 바람이 잘 통하며, 물과 산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 함벽정은 그런 조건을 고스란히 갖춘 공간이다.
이곳에 서면 먼저 시야가 트인다. 탁 트인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 위로 산세가 부드럽게 겹쳐진다.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나무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곳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다.
함벽정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사색을 나누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경치를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자리였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던 시간들이 이곳에 쌓여 있다.
정자의 구조 또한 소박하지만 단정합니다. 과하지 않은 규모, 자연과 어울리는 색감, 그리고 열린 구조는 바람과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물이다. 정자는 벽으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사방이 열려 있는 장소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이 분리되지 않다.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기둥 사이로 스며들며, 그 안에 앉은 사람의 생각도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고즈넉하게 걷기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함벽정으로 향하는 길은 급하지 않다.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고, 풍경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춰 준다. 도시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이곳은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영동 5 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 자리를 찾았다는 사실이 그 가치를 증명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자연의 구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함벽정은 과거의 풍류가 머물던 공간이면서 동시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다시 찾는 쉼의 장소가 된다.
봄에는 연둣빛이 번지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드리우며, 가을에는 단풍이 풍경을 물들이고, 겨울에는 고요함이 깊어진다. 사계절이 모두 제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찾게 된다.
함벽정은 화려한 시설이나 대형 관광 인프라가 있는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오래 남게 된다. 자연과 건축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자리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영동 함벽정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혹시 영동을 찾으신다면, 급하게 둘러보지 마시고 함벽정에 잠시 앉아 보시기 바란다. 오래전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처럼, 바람과 물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