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의 막탄공항, 공간의 온도를 가진 공항
공항은 대부분 비슷한 파사드와 비슷한 공간설계를 가지고 있다. 입국과 출국의 다른 동선을 가지고 사람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중요한 교차점에 면세점과 서비스공간이기도 한 라운지를 배치해 둔다. 사람들은 건물을 이용하지만 동시에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느끼며 머문다. 어떤 건축은 기능만을 수행하고 사라지지만, 어떤 건축은 공간의 기억을 남긴다.
필리핀 세부의 막탄 세부 국제공항 역시 그런 공간이었다. 규모로만 보면 세계의 대형 공항들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유리와 나무,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동선,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 공항은 기본적으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이다. 사람과 짐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한 거대한 기계와도 같다.
하지만 필리핀 세부의 막탄 세부 국제공항 은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은 단순히 이동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하나의 공간 경험을 설계한 건축물에 가깝다.
특히 국제선 터미널인 터미널 2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장이다. 거대한 곡선을 이루는 지붕 구조는 금속이 아니라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대나무와 목재를 활용한 이 구조는 필리핀의 전통 건축에
서 영감을 받은 형태라고 알려져 있다.
건축적으로 보면 이 지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곡선으로 이어진 목재 구조는 공항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준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어지는 지붕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들고 공간 전체에 부드러운 리듬을 만든다. 여기에 자연광이 더해진다.
지붕 구조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은 공항 내부를 강하게 밝히기보다는 부드럽게 채운다. 금속과 유리로 가득한 공항에서 흔히 느껴지는 차가운 분위기 대신, 이곳에서는 따뜻한 빛이 공간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막탄공항에서는 특이한 감각이 느껴진다.
보통 공항은 차갑고 중립적인 공간이다. 누구의 공간도 아닌 중간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공간에 온도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건축에서 공간의 온도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재료, 빛, 구조가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온도다. 금속과 유리 중심의 공간이 차가운 온도를 만든다면, 목재와 자연광은 사람에게 훨씬 부드러운 감각을 전달한다.
막탄공항은 바로 그 지점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공항이 하나의 거대한 실내 공간이라기보다, 열대의 공기를 품은 건축물처럼 느껴진다. 공항이라는 장소는 본질적으로 떠남과 도착 사이의 공간이다.
공항에서 누군가는 여행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마친다. 누군가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세부의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여행자, 새로운 일을 위해 필리핀을 찾은 사람, 혹은 잠시 머물렀다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시간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잠시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막탄공항의 건축은 그 중간의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목재 구조가 만드는 따뜻한 공간은 여행의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게 만들고, 천장으로 흘러드는 빛은 공간을 여유롭게 만든다. 효율만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까지 고려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활주로 쪽 창가에 서서 비행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공항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비행기들은 잠시 멈춰 있다가 다시 움직이고, 결국 하늘로 올라간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들의 삶과도 닮아 있다.
어딘가에서 출발하고 어딘가에 도착하며 다시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공항은 그 흐름이 잠시 머무르는 장소다. 막탄공항은 크지 않은 공항이다. 그러나 그 규모와는 별개로 공간의 감성을 가진 공항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건축이 단순히 기능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장치라는 것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좋은 공항이란 단순히 이동이 편리한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잠시 머무는 동안 시간의 속도를 조금 늦춰주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막탄공항의 목재 지붕 아래에서 느꼈던 따뜻한 빛과 공간의 여유 역시 그런 기억 중 하나다.
여행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간. 그 순간의 공기는 조금 느렸고, 빛은 부드러웠으며, 사람들의 걸음도 어딘가 여유로워 보였다.
이 공항을 떠난 뒤에도 건물의 모습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간의 감각이다. 공항이라는 건축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강한 기억을 남긴다는 것 어쩌면 좋은 건축이란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머문 시간조차 기억으로 남게 만드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막탄공항은 그런 건축에 가까운 공항이었다.